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부터 삼순이, 괜찮아 사랑이야, 나쁜 아저씨, 일타스캔들까지 폭력적이거나 잔인하지 않은 가족드라마나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한다. 매체의 다양성으로 채널은 많아졌는데 내 취향을 찾기는 힘들 때가 있다. 그래서 미드를 뒤적여보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너무 잔인하거나 너무 폭력적이라서 편안히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요즘은 그냥저냥 볼만해서 틀어놓는 드라마가 세 개가 있다. 요일을 기다렸다가 보는 정도는 아니고 음식을 하거나 밥을 혼자 먹을 때, 씻을 때 틀어놓고 흘려 보는 드라마다. 가면의 여왕, 닥터 차정숙, 나쁜 엄마가 그 드라마들이다. 그중에서도 오늘 처음 보게 된 나쁜 엄마의 첫 시작 내레이션이 인상 깊어 글을 써보려 한다.
돼지는 원래 깨끗한 동물이라 한다. 똥은 한 곳에서만 누고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욕심에 좁은 우리에 키우다 보니 똥을 우리 안에 누고 진흙 목욕을 할 수 없어 똥에 몸을 비비게 되고 성질이 못되게 되었다나. 돼지는 목을 위로 쳐들 수가 없는 신체구조 때문에 하늘을 볼 수가 없단다.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은 넘어졌을 때라고.
넘어지고서야 처음 보게 된 하늘은 어땠을까?
나는 하늘 보는 것을 좋아한다. 비 온 뒤에 맑게 빛나는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파란 하늘도 좋아하고, 파란 하늘에 두둥실 구름이 둥둥 떠있는 것도 좋아하고, 파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누가 빗자루로 살살 쓸어내린 듯한 모습도 좋아하고, 해 질 녘 불타는 하늘도 좋아하고 해진 후 핑크핑크한 하늘도 좋아한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변화무쌍한 달과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까지 나는 하늘을 사랑한다.
사람은 굳이 넘어지지 않아도 고개만 젖히면 하늘을 볼 수 있지만 오늘 하늘 한번 보지 않고 하루를 보낸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핸드폰에 코 박고 있느라 하늘을 볼 시간이 없겠지. 하늘을 사랑한다 말하는 나조차 딱 두 번 하늘을 봤다. 아침에 바람이 엄청 불어서 아침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이 이렇게 바람 불 때도 하늘을 나는지 궁금해서 한 번 보고, 저녁 먹다가 유난히 노랗고 동그란 달이랑 눈이 마주쳐서 한 번 더 보았다.
내가 자꾸 하늘을 보라고 잔소리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볼 때마다 허리가 구부러지는 우리 엄마다. 엄마는 오늘 하루 하늘을 봤을까. 나이가 들어도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시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우리 엄마다. 이제는 일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들이 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라는 말 밖에 못하는 나는 죄스럽다.
엄마는 자식에게 우주 같은 존재다. 늙은 엄마는 여전히 자식에게 우주 같은 존재라서 힘이 든다. 넘어져야 볼 수 있는 하늘을 우리 엄마도 다리 수술을 하고 봤었겠지. 무릎관절치환수술은 너무 통증이 심하고 재활이 고통스러운 수술이었다. 3주 정도 병원에 입원해서 고된 인생을 돌아보며 고통에 몸부림쳤던 엄마는 무릎관절수술을 하고도 허리를 굽혀 열심히 일을 한다. 엄마의 허리는 힘이 드는지 자꾸만 구부러진다.
어릴 때는 나중에 커서 돈을 벌면 엄마에게 용돈도 많이 드리고 엄마 고생도 좀 덜어드릴 줄 알았다. 그런데 빠듯한 살림에 그것도 쉽지가 않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자식에게 하는 것 반절도 엄마에게 못하는 것 같다. 엄마의 인생의 짊을 덜어드리기엔 역부족이다. 그저 가끔 드리는 용돈, 택배로 보내는 먹을거리로 죄책감을 덜 뿐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지만 부모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자식은 몇이나 될까? 아마도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많을 것이다. 그중에 하나는 내 자식일 것이고...
넘어지고서야 하늘을 보게 된 돼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늘을 봐서 기뻤을까? 또 하늘을 보고 싶었을까?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던 삶을 천천히 가게 되었을까? 넘어지지 않고도 하늘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을까? 일어나서 원래 살던 대로 다시 아등바등 살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