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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프로세코 Oct 22. 2020

나의 사랑하는 생활

피천득 선생님의 산문집 '인연' 속 한 꼭지 제목 차용


되풀이 되지만 주말의 기쁨을 안겨주는 일주일이 좋다. 커피를 마시고 온몸과 함께 마음을 풀어주고 달리는 아침이 좋다. 아무도 깨지 않았을 때 고요하게 차 한잔과 일기장과 함께하는 아침의 한시간을 좋아한다. 식물이 좋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올해만 여러 풀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구글렌즈로 이름과 학명까지 알아낸 기억이 있다. 고사리를 좋아한다. 뉴질랜드의 상징이라 그 곳의 숲에만 있는 식물인 줄 알았는데 한국의 숲에도 엄청나게 많이 퍼져있는 여러 가지의 고사리가 있다. 영어로는 fern이라고 한다. 한남동 우사단로에 있는 생활편집숍에 있는 고사리 포스터를 사서 액자에 끼워 넣을거다. 그만큼 고사리가 예쁘고 좋다. 숲의 냄새가 좋다. 달릴 때 뜨겁게 달궈진 몸에 떨어지는 한방울의 땀이 주는 촉감도 좋아한다. 사람들을 도와주는 걸 좋아한다. 내 몸뚱이 쓸 곳이 있구나 위로가 된다. 나무와 도자기 식기를 좋아한다. 음식을 담는 용기는 따뜻하게 데워진 도자기였으면 좋겠고 음식을 퍼 먹는 수저는 나무였으면 한다. 그 조합을 좋아한다.      




향을 좋아한다. 향초도 좋아하고 인도에서부터 펴왔던 신센스 스틱도 좋아한다. 강렬한 향을 좋아한다. 달콤한 것보다는 우디하고 시트러스하며 묵직한 느낌을 주는 향이 좋다. 공기가 매캐해지기 전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어야 한다. 강한 향을 좋아해서인지 웬만한 허브와 향신료도 좋아하고 잘 먹는다. 대학교 2학년 때, 스타벅스에서 일하며 맛본 차이라떼는 치과 냄새가 난다며 손절하려고 했지만 그 후에 자꾸만 당기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원래는 인도식 밀크티라는 걸 알고, 3년 후 인도에 배낭여행가서 하루에 10잔 정도는 먹게 되는 좋아하는 차가 되었다. 고수도 없어서 못먹고 태국식 해물 당면 샐러드에 넣어주는 중국 샐러리도 좋아한다. 이쯤 되면 빡! 향성애자라고 해도 되겠다.      




책을 좋아한다. 전자책을 좋아한다. 산문을 좋아한다. 책 사모으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나 좋은 읽을거리와 읽어야 할 거리가 많다는 것에 기쁘면서도 압도된다. 어느 것부터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다가 항상 집는 것은 산문집이다.      




영어를 좋아한다. 언어를 좋아하는 것인가. 그것에 비하면 수능의 언어 점수는 형편이 없었다. 영어는 좋아했고 언어영역보다는 2등급이 더 높게 나왔다. 다른 언어가 주는 세계와 생각의 확장이 좋다. 언어를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이 보이고 그들만의 세계가 보인다. 우리는 고구마라고 부르는 것을 영어로는 ‘스위트포테이토’ 즉, 단감자라고 부른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어로는 ‘쿠마라’라고 말한다. 우리말이랑 또 소리가 비슷하다. 일천 아니 오만여년 전에 우리 몽골계 사람들과 남방의 폴리네시안계 사람들의 교류가 있었을까? 소소한 것에서 이런 생각까지 뻗치게 하는 게 쓸데없는 언어의 힘이다. 그치만 나는 쓸데 없는 것을 좋아한다. 소소한 것들이 주는 힘이 좋다. 사소하지는 않다. 아, 내가 얼마 전에 새로이 의미를 내린 소소함은 작고 소중한 이란 뜻이다. 작고 적은 것보다는 작고 소중한 것이 듣기에도 느끼기에도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다.     



 

오래 된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그럴 겨를이 없는 디테일들을 좋아한다. 무심하게 서있는 막대가 긴 빗자루도 예쁘고, 아무렇게 묶은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같은 모양으로 가지런히 묶여있는 마늘 짝도 예쁘다. 베이지와 갈색 보라색 자주색 그 사이를 어디쯤 돌아다니는 색의 조합이 아름답다. 저 마늘 묶음을 부르는 단위가 있었는데 뭐였더라. 다 무너져가는 집이 예쁘고 동네 골목을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예뻐서 좋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기회가 없었던 그들의 서사가 세상 어떤 이야기보다도 소중하고 아프다. 그래서 좋다.      




나의 익숙한 동네를 걷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은 낯선 동네의 골목을 걷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때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둘은 항상 공존한다. 그렇기에 삶이다. 모난 채소와 과일이 좋다. 비닐과 플라스틱에 고이 쌓인 예쁜 과실과 수확물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하는데 그걸 발견하는 것이 좋다. 그 누구보다도 개성이 있으니까. 어쨋거나 맛은 똑같거다 더 좋기까지 하다.    



  

이렇게 쓰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정리가 될 것 같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이거 뭐, 10분의 1도 뱉어내지 못한 기분이다.      




파란 하늘이 따뜻하게 물들어가는 저녁 노을을 좋아한다. 이건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 아, 제목이 사랑하는 나의 생활이니까 사랑하는 정도도 괜찮겠지. 동이 트는 것도 좋아하긴 하지만 지는 해와는 느낌이 다르다 많이. 지는 해와 물들어 가는 해를 보고있자면 낭만의 풀장에 첨벙 뛰어들어 수영도 못하는게 유유히 헤엄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뭐든지 노래할 수 있고 뭐든지 말할 수 있으며, 뭐든지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 아닌 용기가 난다. 그때만큼은 나의 감상적인 자아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똘기가 충만한 시간이란 말이다.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고 또 눈물이 난다. 슬프다기 보다는 숨쉬고 있는 이 순간과 지나온 날들의 기억과 추억이 아름다워서 눈물이 흐른다. 아름다워. (궁상이지?)     




달리기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추가된 것이다. 달리기를 하면 자연이 좋아지고 참게가 좋아지고 닭이 좋아지고 감자고 무고 콩이고 옥수수고 좋아진다. 계절의 변화가 좋아진다. 그리고 내가 좋아진다. 숨이 턱턱 참이 좋아지고 종아리 당김이 좋아진다. 달리기는 나에게 많은 좋아하는 것들을 준다.      




글쓸 거리를 나열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작에 쓰지는 않는다. 토픽을 나누어 보고 상상으로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 중의 한 꼭지를 읽고 바로 쓴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소소한 것을 찍는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멀리서 관조하기도 한다. 색의 조합을 보고 빛의 방향을 본다. 어디서 왔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피사체를 보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 사진 찍는 것이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만들면서 기분이 좋았던 메뉴는, 지금 생각이 나는 대로 뱉어보자면, 타이 바질 볶음과 허니레몬생강 치킨, 허니 머스타드 치킨, 그릭샐러드, 애플크럼블, 무엇이든 볶아서 만들어내던 볶음 국수이다. 만두도 귀찮긴 하지만 연인과 도란도란 앉아서 서로의 만두 모양에 훈수질을 하며 만두를 빚어내던 그 시간이 좋다. 물론 맛도 좋다. 삶아서도 먹고 가볍게 팬프라이해서도 먹는다. 나는 팬프라이한 만두가 더 좋다. 나는 베이킹 또한 좋아하는데 거기다 잘하기까지 한다. 레몬파운드, 프룻케익, 초콜릿케익 등등 밀도가 높은 케익을 좋아한다. 포크로 십자가 모양을 내면서 찍어 굽는 피넛버터 쿠키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 만들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각국 고유의 맛들을 느껴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그 맛이 그리워질 때면 내 손으로 그것과 가깝게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무방비 상태로 연인과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런 시간을 좋아했다라고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상대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까? 아직 이별 후에 깊은 연애를 해보지 못해서 어떤 느낌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을 사람자체로 보는 사람을 좋아한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듯 꼭 껴안는 느낌을 좋아한다. 얼굴에 퍼부어 받는 뽀뽀세례도 좋아한다. 그 편안함이 좋고 그립다. 그 사람이 그리운걸까? 그 순간일까.      




배우 박정민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배우가 없었다. 사실 이 사람을 알게 된건 고작 지난 8월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영화에서 유이를 분했는데 옆에 앉아있던 당시의 데이트남이 박정민이잖아! 라는 말에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후로 여러 매체에서 오며가며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사람이 정말 좋다. 그래서 좋다. 연기도 잘하지만 사람 자체가 좋은 기운이 나는 사람이라 좋다. 사람을 사람자체로 볼 사람일 것 같아서 좋다. 내 예감이 틀리지 않으면 좋겠다. 앞으로 계속 좋아하는 배우는 박정민이 되게. 오빠! 박정민보다 한 살 어려서 다행이다.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다.      




걷는 걸 무지 좋아한다. 가벼운 가방과 편안한 신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끝까지 걸을 수만 있을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그것도 좋아하는 것에 추가가 되었을 것 같은데. 올해 해보고싶었던 건데 한남동 보광동 길을 산티아고 순례길 거리만큼이나 걷게 되었음 좋겠다. 그만큼 그 동네가 오랫동안 보존이 되면 좋겠다는 말이다.      




나의 F성향을 좋아한다. 싫을 때도 있지만 좋을 때가 더 많다. 감정, 감상, 공감, 이큐가 높아서 감정이 다양하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보고도 잘 울고, 작은 것에 감동을 하고 조그만 것들이 예쁘고 그래서 세상이 아름답고 나도 작아서 아름답다. 가끔 내가 F성향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세상이, 삶이 좀 삭막하지 않았을까 한다. 상상만으로 끝나는 것이 다행이다.    



  

눈물이 잘 난다. 너무 아픈 경험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면 눈물을 흘리는 게 좋고 감사하다. 마음 속 할 일을 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좋다. 오늘도 지는 해를 보면서 눈물이 나고 이소라의 처음느낌 그대로를 듣고 눈물이 난다. 이 노래를 듣고 울 수 있어서 좋다. 아, 핑크다이어리를 보니가 생리예정일 7일 전이다. 이 이유도 있는 것인가. 갑자기 든 생각인데 1년 전 딱 이 시기,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까사문디 비앤비에서도 이 노랠 들으면서 눈물을 왈칵 쏟았던 기억이 난다. 연례 행사인가.      




아마도 두 번째 나의 사랑하는 생활의 제목을 단 글을 또 쓰지 않을까싶다. 아빠 청국장을 끓여야 해서 이만 줄인다. 나는 아직 반도 토해내지 못했는데!     

이 글에서 글쓴이가 좋아하는 것은 몇가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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