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한문시간이었을 것이다. 노숙이란 단어에 '길 로(路)'가 아니라 '이슬 로(露)'를 쓴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열여덟살 철부지는 그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길바닥에서 자는 게 아니라 이슬 맞으며 잔다고 표현했다는 이유로. 그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철딱서니가 없어 어이도 없다. 노숙에 낭만이라니.
직장 때문에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생활을 한다. 서울역에 자주 가면서 나는 세상에 노숙자가 너무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서울역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뎃잠을 자는데 전국으로는 몇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한날은 구글에 '전국 노숙자'를 검색해봤다(이것도 이제 보니 참 태평한 일이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실태조사를 해보니 전국에 노숙인이 1만1340명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거처도 소속도 없는 노숙자 수를 어떻게 헤아렸는지 알 수 없지만 틀림 없이 그보다는 많을 것이었다. 그러면 또 열여덟살 나의 등짝을 때려주고 싶어진다.
내 등짝을 때려주고 싶은 순간은 숱하게 찾아왔다. 코로나19가 무섭게 번지던 3월, 서울역에서 나와 광화문쪽으로 걷다가 마스크를 쓴 채 구걸 중인 노숙자를 봤다. '마스크를 썼네?' 무심코 생각했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면 바이러스가 노숙자는 피해가나. 그간 노숙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에 앉아 있었던 걸 의아하게 봤어야 하는 게 아닌지. 나는 결코 착한 인간이 아니고 딱히 착한 인간이려고 하지도 않지만, 이럴 때는 스스로가 좀 무섭다.
서울역을 자주 오가면서 잡지 <빅이슈>를 많이 사게 됐다. 노숙자 자립을 위해 만들어진 잡지다. 1000명 넘는 노숙인이 빅이슈 판매원으로 일했거나 일하고 있다. 5000원짜리 잡지를 사면 절반은 판매원에게 간다. 올해 10주년을 맞았는데 10주년 기념호를 내기 무섭게 코로나19 타격으로 발간이 중단될 위기를 맞았다. 인터넷 사전예약판매를 받아서, 말하자면 펀딩을 하는 방식으로 근근이 발행이 이어지고 있다.
구걸하는 노숙자들에게는 적선하지 않으면서 빅이슈를 사는 마음은 사실은 얄팍한 것이다. 노동하고 있는, 자립 의지가 있는 이들을 돕는다는 건 구실이다. 너무 많은 걸인이 있고 그들에게 모두 적선할 수는 없으니까 빅이슈를 사는 것이다. 적당히 뿌듯하고 싶은 것이다. '이슬 로'에서 낭만을 찾는 수준이다. '일한 자만 먹어라'를 체화한 노예근성의 영향도 있겠다.
그래도 당분간은 빅이슈를 꾸준히 사서 볼 것이다. 별 수 없지 않을까. 서울역에 갈 때마다 노숙자가 너무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