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는 마음의 최소단위

목요사전10

by 무화과

거리 7 (距離)

[명사]

1. 두 개의 물건이나 장소 따위가 공간적으로 떨어진 길이.

2. 일정한 시간 동안에 이동할 만한 공간적 간격.

3.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간격. 보통 서로 마음을 트고 지낼 수 없다고 느끼는 감정을 이른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거리두기는 마음의 최소단위


거리두기의 나날이다. 코로나19로 '거리를 둔다'는 냉정한 표현이 현명하고 다정한 말이 됐다. 이 풍경이 낯설다. 코로나19 전까지 나는 늘 거리두기에 실패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어림하는 데 약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태초의 기억은 '아쿠'. 미취학아동 시절의 나는 자궁에 열달 머물다 태어난 동물답게 구석진 공간에 들어가 박혀 있는 걸 좋아했다. 특히 좋아한 곳은 식탁 아래. 사방이 뚫려 있되 머리 위는 막혀 있어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밝은 공간.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어 갇힐 염려도 없는 곳. 하지만 집안 모든 공간과 분리된 곳. 유일한 문제는 식탁 아래 앉아있던 내가 밖으로 나오려 할 때마다 머리를 박는다는 점이었다. 내 키와 식탁의 높이 간 고저를 가늠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기 때문... 이라고 이제 와서 추측한다. 아무튼 나름의 평화를 즐기다 '이제 밖으로 나가볼까나' 하는 순간 머리를 가격하는 요란한 충격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억울함을 느끼곤 했다. 아직도 그 혼자만의 근거 없는 배신감이 생생하다.


나의 '식탁 아래 시간'은 늘 자지러지는 울음으로 끝이 났다. 엄마는 그걸 '아쿠'라고 불렀다. '아이쿠'의 준말 정도겠다. 엄마는 내가 식탁 아래로 기어 들어갈 때마다 "너 그러다 또 머리 박고 '아쿠!' 한다~" 하고 겁을 줘 타일렀다. 그래도 나는 자라난 몸집이 식탁 아래를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까지 기어이 식탁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엄마는 요즘도 이 얘기를 한다. "다른 건 다 야물딱지게 굴다가 꼭 식탁 아래서 일어나다가 머리를 박고 울더라? 그러면 '얘가 애는 애구나' 싶어서 웃음이 터졌어."


어림에 멍청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30년가량 봐온 멍청함이라 엄마는 이제 웃음을 터트리는 대신 '저 새끼는(당신 새끼인데) 도대체 왜 저럴까'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운전할 때는 네비게이션이 무색하다. "500미터 앞 좌회전입니다"라는 말을 듣고서 100미터 앞에서 좌회전을 해 서울구경의 서막을 올린다. 길이뿐 아니라 양도 마찬가지다. 드립커피에 재미를 들인 뒤부터는 아침마다 '커피향 맹물'과 '지옥에서 온 원두즙' 사이를 오갔다.


이런 건 그래도 애교 수준이다. 참혹한 건 사람과의 거리를 어림하는 데 실패했을 때다. 가령 "핸들이 고장난 1톤 트럭"처럼 돌진했던 친구에게 무언의 거리두기를 당할 때. 강아지처럼 무턱대고 처음 본 남녀노소에게 근거 없는 기대감을 품었다가 마음 속 모래성이 무너질 때. 일터에서 필요에 의해 장착한 친절을 겪어놓고 '우리는 이제 친구!'라고 착각했을 때. 이런 순간은 정확한 언어로 오지 않는다. 정확한 감정으로 온다. '내가 또 거리두기에 실패했구나' 뒤늦은 깨달음이 머리를 가격하는 순간, 마음 어딘가가 분명히 허물어진다. 수시로 여기저기서 저 혼자 이별통보를 받는다.


심지어 입사 초기에는 회사와 나의 사이를 어림하는 데 실패했다는 깨달음에 자주 얻어맞았다. 흠모하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맡은 업무가 매일 새롭게 버거웠지만, 그럼에도 이 일을 좋아한다. 내가 회사에 품는 애증만큼 회사도 나에게 복잡다난한 기대와 확신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회사와 나의 거리는 무수한 미지수와 복잡한 수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짐작했지만. 그 미지수에는 월급과 알량한 사명감, 동료, 연차와 이따금의 보람 같은 것들이 무수하게 대입될 거라 생각했지만. 실은 간단한 것이었다. 회사와 회사원. 언제든 대체할 수 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거리두기에 능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새 부서에 발령 받았다. 유일한 여성부원이자 막내로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갈아넣었다. 일이 재밌기도 했지만 일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워라밸주의자이자 가족주의자. 일과 거리를 두지 않으면 내가 재만 남게 될 것이라고 여러 번 경고했다. 그리고 지친 나를 아주 가까이서 보듬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차라리 우리 모두 거리를 둡시다! 집에서 가족과 오붓하게! 하고 공공연하게 선언해주는 요즘이 속 편하다. 그래 우리는 어차피 살기 위해 적당히 떨어져 지내야 하는 존재야. 살 부대끼며 사는 최소의 운명공동체(이를테면 남편)와 잘 살아남아보자. 마음의 최소단위를 찾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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