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이 됐다. 서른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인용하기를 사랑하는 구절은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최승자, 삼십세)겠지만 나의 기분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마이크 타이슨)이다.
이렇게 서른을 맞을 줄은 몰랐다. 역병이 창궐하는 와중에, 보신각 타종도 소란스러운 카운트다운과 왁자지껄한 건배도 없이, 유부녀인 채로, 낯선 도시에서. 인생은 정말로 알 수 없는 것. 지금도 제법 괜찮은 어른이지만, 그래도, 실은 내가 좀더 멋진 어른인 채 서른 살을 맞을 줄 알았다. 더 정의롭고 능란한 어른일 줄만 알았다.
아침에 침대에서 남편과 굿모닝키스를 하다가 서른이 되기 싫다고 질질 짰다. 어제 밤에 카운트다운할 때는 와인에 취해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스물아홉살인 내가 서른이라는 숫자에 뺨을 처맞으며 눈을 뜬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이십대보다 삼십대가 훨씬 좋을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내 이십대가 얼마나 멋졌는데 니가 뭘 알아! 하고 질질 짰다. 참 웃기는 일이다. 이십대때는 면접 떨어지고 질질 짜며 지냈는데. 이럴 때는 유럽여행, 첫 연애, 대학 축제, 처음 신어본 하이힐, 꽃다발 같은 것들로만 이십대를 기억한다.
서른이 겁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스무살때 기대했던 모습에 못 미친다는 패배감. 둘째, 그럼에도 내 인생이 이제 고여버렸다는 절망감. 대입-입사-결혼이라는 나름의 변곡점이 차례로 찾아왔던 이십대와 달리 이제 나의 인생은 어느 정도 큰 틀이 정해졌고, 나는 그저 그런 소시민으로 평생 살다 죽겠구나 하는 명백한 깨달음. 스무살의 나는 내가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줄 알았지. 근데 각을 보니 영 그른 것 같다.
나는 서른살 먹은 애새끼다. 이런 기분을 작년(아 2020년이 작년이라니) 9월쯤부터 여기저기 하소연하고 다녔다. 30대에 제일 행복했다는 말, 인생이 원래 다 그렇다는 말, 나이라는 건 인생의 스펙트럼 중 한 지점에 불과해 별로 중요치 않다는 말 등등은 그닥 위로가 되지 못했다.
이런 내게 오늘 친구 A가 자기에게 위로가 된 구절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인턴, 입사 스터디, 입사까지 함께한 동갑내기 친구다. 이십대의 절반을 함께 보냈다.
어떤 식이든, 꿈꿨던 것보다 조금 폼이 안 나더라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여전히 나이니까. 나를 데리고 잘 살아봐야겠다.
이런 걸 보내는 나에게 마스다미리 작가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친구가 있으니까. 이미 제법 괜찮은 서른살 으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