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내 인생의 반칙자

목요사전05

by 무화과

언니

명사

1.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이이거나 일가친척 가운데 항렬이 같은 동성의 손위 형제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주로 여자 형제 사이에 많이 쓴다.

2. 남남끼리의 여자들 사이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위인 여자를 높여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3. 오빠의 아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언니는 내 인생의 반칙자, 세상에서 유일하게 응원하고 싶은 반칙자


이슬아 작가가 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첫 날 주제는 '유일무이(唯一無二)'였다. 처음 모인 이들이 자신을 설명하기 좋은 주제라 생각해 정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언니에 대해 썼다.


나는 왜 유일무이한가. 이건 나를 사춘기 애새끼로 만드는 질문이다. 순식간에 나를 보풀이 잔뜩 일어난 교복을 입은 중학생으로 돌려놓고, 나로 하여금 불량한 눈동자를 빛내고 싶게끔 하는 말이다. 내게는 언니가 있기 때문이다.


4살 위인 언니가 있다. 태어나 보니 그랬다. 4살 차이 나는 동성(同性) 형제와 산다는 건 체급이 다른 권투선수와 매일 링 위에 오르는 것과 같다. 부모나 선생의 콩알만한 관심과 칭찬에도 볼이 빨개지도록 행복해졌던 나는 지난하고 치열한 인정투정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초등학생인 내가 제아무리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와봤자 중학교 전교 1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의 초경은 4년 전 언니가 이미 처음 했다. 첫째를 통해 훌륭히 선행학습을 마친 부모는 둘째의 빛나는 성장과정에 허둥거리지도 경탄하지도 않았다. 내가 신기한 건 나뿐이었다. 4살 차이란 그렇게 엄혹한 것이다.


여러모로 불리한 형세였다. 부모님은 맞벌이였다. 자식 하나하나에게 정확한 사랑을 주기엔 지나치게 피곤해보였다. 더구나 언니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모범생이었다. 조용했지만 친구가 많았다. 또래들 사이에서 말 없이 있어도 빛나는 데가 있었다. 가끔 지칠 때도 주눅 들어보이진 않았다. 말하자면 자원은 희소했고, 경쟁업체는 굴지의 대기업이고 그런 상황이었다. 심지어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다. 교무실로 심부름을 가면 놀랍게도 "어머, 네가 지은이(가명이다) 동생이구나?" 하고 알은 체 하는 선생들이 많았다. 지은(가명이라고 했다) 학생은 벌써 졸업을 했는데.


나는 그래서 언니와 나를 동시에 아는 모든 이들을 미워하며 자랐다.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나는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같은 질문을 곱씹던 사춘기때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 반항심과 열기를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도둑질을 일삼았다, 는 얘기였다면 글쓰기 모임에서 매번 내가 그간 얼마나 빛나는 것들을 훔쳤는지 자랑할 수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화가 날 때마다 키보드를 두두다다 두들기며 글이나 썼다. 아무 글이나 써댔다. 내 목적은 밤 늦게까지 거실에 불을 환히 켜두고 키보드 소리를 내며 가족 모두의 숙면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소설이든 일기든 알 바 아니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는 유난스러운 문학소녀로 가족들의 자랑이 됐다. 언니는 글 같은 건 쓰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이 버릇 때문에 화가 나야 알량한 글이라도 쓰는 어른으로 성장해버렸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화가 나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고, 행복하게 침대에 누워 배를 긁으며 '아, 글 쓴 지 오래됐네' 생각하는 어른이 돼버렸다.


나를 이렇게 게으른 짝사랑에 빠지게 만들어놓더니 언니는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퇴사를 했다. 직장인 기혼 여성으로 간신히 수준을 따라잡았다 했더니 이제는 퇴사라니... 심지어 퇴사 이유도 공부를 더 하고 싶단다. 공부라니... 이길 수가 없다. 4살 아래 동생이 휴학과 취업준비로 충분히 헤맬 수 있도록 그녀는 칼졸업에 칼취업을 했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지는 아마 오래됐을 것이었다. 또 다시 체급을 올린, 나의 사랑하는 그녀가 언제나 나보다 더 먼저, 많이 행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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