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노답

목요사전06

by 무화과

인생(人生)

명사

1.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2. 어떤 사람과 그의 삶 모두를 낮잡아 이르는 말.

3. 사람이 살아 있는 기간.




인생은 노(NO)답. 그게 나쁘지 않다.


스물 셋, 터키 블루모스크 앞 잔디밭에 누워 햇살을 받으며 생각했다. '내 인생의 정점은 지금 여기구나. 앞으로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 청춘처럼 보일까? 그건 절망이나 우울이 아니라, 추산이었다. 객관적 전망과 예상 같은 것.


난생 처음 내 돈으로 하는 해외여행이었다. 휴학하고 1년 동안 모은 돈을 여행에 써버렸다. 한 달 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취업준비를 해야 할 테고. '운이 좋게' 취업한다 해도 그때부터는 한 달씩 여행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것이므로. 이제 내 행복은 내리막길만 남아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일단 한국에 돌아가서도 취업준비에 착수하지 않고 진로고민을 거듭했다. 또 놀랍게도 그보다 행복한 순간들이 이후에도 찾아왔다. 내 예측보다 삶은, 사실은, 더 살아볼 만한 것이었다. 분명 중간중간 바닥을 치는 일도 많았지만. 아무튼 그 때가 행복의 고점은 아니었다.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그때 '재미 다 봤다'고 내 자신에게서 손을 떼버렸으면 어쩔 뻔했는가 말이다.


결국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다 읽었다. 도대체 재미가 없어 번번이 완독하지 못했던 책. 하지만 이번에는 심장을 때리지 않는 문장이 없다. 예컨대 이런 문단이다.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이 책을 처음 집어든 건 2015년이었다. 내 생일을 앞두고 언니가 선물해준 10권의 책 중 하나였다. 맨 처음부터 영원의 회귀성이 나오는데 읽다가 이해가 안 가서 매번 첫 장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불과 5년 만에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때 '이 책은 다시 읽을 일 없겠다' 하고 내다버렸으면 어쩔 뻔했는가. 아마도 그때는 이 책이 내게 와닿는 정점이 아니었던 거겠지. 내 시간이 쌓여서 책을 향해 오르막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역시 그 정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계속 살아보는 수밖에는 없다. 인생은 완성작 없는 초안이라고 해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