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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날마다 여성으로 태어난다

목요사전16

by 무화과

여성1 女性

명사

1. 성(性)의 측면에서 여자를 이르는 말. 특히, 성년(成年)이 된 여자를 이른다.

2. 서구어(西歐語)의 문법에서, 단어를 성(性)에 따라 구별할 때에 사용하는 말의 하나.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여성은 날마다 여성으로 태어난다


내일은 나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 다음해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에 선 날이 계기가 됐다. 그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빵은 여성의 생존권, 장미는 여성의 참정권을 의미했다고 한다.


나는 언제부터 여성이었을까? 날 때부터 여성이었지만, 날마다 여성이 된다. 가끔은 여성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학교 교실에서 여자애들만 모아두고 순결서약을 시켰을 때, 대학 내 성폭력을 목격하면서, '여자애들은 겨우 일 가르쳐놓으면 애 낳으러 간다'는 직장 상사의 폭언 속에서, 결혼 준비를 하다가, 나는 여성이 됐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나라는 인간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 과장이 아니라 이틀에 한 번 주기로 '언제 애 낳을 거냐' 혹은 '아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꼭 한 번은 듣는다. 가족들로부터, 직장 상사나 동료, 거래처 직원으로부터. 때로는 덕담이기도 하고 인생 선배의 조언일 때도 있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이런 피로감조차 배부른 투정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거저 여성이 됐지만 '내가 나 자신이기 위해서' 모든 걸 걸고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어서. 고(故) 변희수 전 하사는 한국에서 스스로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첫 직업군인이다.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가 강제전역 처분을 당했고 지난 3일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럼에도. 내게는 때때로 족쇄처럼 느껴지는 성별이 누군가에는 아득한 꿈이라고 해도. 내 족쇄가 가볍지는 않다. 나는 날마다 여성이 되고, 수시로 멱살 잡혀 100여년 전 거리로 끌려나오는 기분이 든다.


"다음 생에도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면 나는 영어권, 백인, 이성애자 남성으로 태어날 거야" 가끔 자조적인 농담을 하곤 했다. 기득권 중의 기득권으로 태어나 페미니즘이고 나발이고 미국 하이틴 영화 속 럭비부 주장처럼 살고 싶다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성별을 고를 수 있다면, 나는 여성을 택할까? 아닐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한 안일한 동경과 막연한 자신감으로 나는 아마 남성을 택하겠다.


그러나 내일은 나의 날이다. 지금의 나는 여성이다. 여성으로 살아서 좋은 점을 물으면 답할 수 없지만 내가 나여서 좋은 점은 밤새 말할 수 있다. 여성으로 모아온 나의 역사가 제법 애틋해서, 여성의 날은 나의 날이다. 나의 시위, 나의 축제다.


내일은 나를 위해 장미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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