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여행할 권리'에는 이런 빛나는 문장이 있다. "오래 전부터 나는 국경을 꿈꿨다. 왜냐하면 나는 국경이 없는 존재니까." 그는 무작정 차를 몰고 끝까지 달려 갔다가 바다 또는 철조망을 마주한 일이 있다고 했다. "국경에 가서 아무런 사상의 전환 없이도, 혹은 어떤 권리도 포기하지 않은 채, 내 다리로 월경(越境)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나 역시 국경을 갖고 싶었던 적이 한 번 있다.
때는 여름. 혼자 덴마크 여행 중이었다. 북유럽의 물가에 제압당한 나는 게스트하우스 6인 도미토리에 묵었다. 맞은편 침대서 밤마다 지독하게 코를 골던 독일 아줌마는 내게 물었다. "덴마크까지 왔는데 스웨덴에 안 간다고? 왜?" 나는 답했다. "그거야 나는 덴마크에 온 거니까. 스웨덴이 아니라." 독일 아줌마는 '쯧쯧 재미 없는 아시안 소녀...' 하는 표정으로 세면도구와 수건을 챙겨 화장실로 가버렸다. 나는 2층 침대 아랫칸에 멍청하게 앉아서 '그러게... 왜 스웨덴에 안 갈까...' 했다.
그런 것이다. 국경이 있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과 국경이 없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의 차이는.
며칠 뒤 결국 나는 스웨덴에 갔다. 엉뚱하게도 덴마크서 만난 남자가 스웨덴에 간다기에 쫄래쫄래. 처음 보는 외간남자 때문에 국경을 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가 마음에 들어 국경을 넘어놓고 마음에 남은 건 국경뿐이다. 공항을 거치지 않고, '너는 왜 여기로 오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지 않고 다른 나라로 넘어가본 건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코펜하겐에서 말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데 바다 한 가운데서 휴대전화 진동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외교부의 각종 안내 문자메시지들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휴대전화 전원을 켤 때면 그런 문자들이 줄지어 도착하곤 했었다. 아마도 그 순간에 내가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 국경을 통과한 모양이었다. 차창 밖 바다를 멍하니 보던 그 어떤 순간에.
그 외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칼 찬 군인이 와서 여권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졸린 표정의 역무원이 와서 차표 검사나 하고 간 게 전부였다. 맞은 편에서는 한 여자가 자전거를 벽에 기대놓더니 접이식 의자를 펼쳐 앉았다. 메신저백에서 무심히 책을 꺼내 그림처럼 책을 읽었다. 그런 것이었다. 국경을 예사롭게 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품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