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사전03
도련-님
명사
1. ‘도령’의 높임말.
2.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을 높여 이르거나 부르는 말.
도련님은 '결혼식 파티는 끝났어. 가부장제 세계에 온 걸 환영해'
엽기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선배A가 시동생을 "도련!"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미혼일 때. 선배A는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손아랫사람'인 그를 '높임에 또 높임을 해가면서' 부를 이유가 없다"고 했다. '도령' 자체가 나이 어린 남자를 양반 호칭을 차용해 높여 부르는 말이니까.
이 호칭이 얼마나 문제적인지는 내가 결혼한 뒤에야 알았다. 높임에 높임인 건,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처형'과 비교하면 이 호칭이 불공평할 정도로 높다는 데 있다. 내게는 언니가 있고, 남편은 그를 '처형'이라 부를 수 있다(나의 문제제기에 그는 '처형님'으로 부르기로 했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도련님'과 비교했을 때 '처형'이란 얼마나 담백한 호칭인가. 무례할 정도로. 높이거나(처형님) 낮추는 게(처형) 손바닥 뒤집듯 간편하고 관습상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건 또 얼마나 자유로운가.
도련님은 애교다. '남편'과 '여편네' 사이, '시댁'과 '처가' 사이, (아직 자녀계획은 없지만)'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사이에서는 나는 자주 분통이 터진다. 혼인관계에서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평등하지 못하고 한쪽이 현저하게 멸시당할 때, 그런데 대체할 언어가 사회에 없을 때, 나는 자주 외로운 기분이 든다.
문제는 내가 이 호칭들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편해서든, 다른 호칭을 찾지 못해서든,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기를 원해서든.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책에는 '결혼한 여성은 기존의 남성중심 질서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가부장제 부역자로 비난받곤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결혼을 앞두고 이 책을 읽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아픈 말이다.
내가 K-기혼 여성으로서 받는 고통이, 고통을 받고만 있는 것이, 또 다시 다른 고통을 예고한다는 절망감. '바깥에서 직장인 여성으로서 송곳같이 싸우며 사는데 가정 내에서도 또 싸워야 하는 건가' 하는 피로감. 그리고 다시 '가족끼리 제대로 토론하지도 않았으면서 벌써 피로하다니 나는 비겁해' 하는 죄책감.
시동생을 "도련님"이라 부를 때, 이 갖가지 감정들로 순식간에 지쳐버린다. 사랑하는 남편과 또 다른 가족을 얻었다는 행복이 위협 받을 만큼. 행복만 보고 싶어서 외면하고 싶어질 만큼.
남편에게 이런 말들을 쏟아놓자 그는 "불쾌하고 억울할 수 있는 걸 안다.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게 어떻겠느냐. 대신에 내가 '처형님' '처가댁'으로 호칭을 최대한 높여 부르겠다"고 했다. 그 나름대로 고심 끝에 내놓은 대안이었다.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꺼냈을 때 어느 쪽이든 상처를 받게 될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대결구도는 '시부모 vs 나'라고, 나도, 그도 무의식 중에 전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불편한 호칭들을 감내해야 하는 이유가 오로지 시부모일까? 그러니까, 유~구~한 가부장제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게 바로 그들인가? 그건 알 수 없다. 제대로 얘기해본 적조차 없으므로.
결혼 4개월차. 시부모는 나를 잘 모른다. 내가 그들을 잘 모르듯이. 나는 언제 그들과 이 갖가지 감정에 대해 말해볼 수 있을까? 내가 첫 발을 딛듯 입술을 뗐을 때,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초보며느리와 초보시부모는 함께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