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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 Aug 19. 2024

애기엄마, 분리수면 하세요?

육아법에도 유행이 있다

육아법도 유행을 탄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자존감 교육, 애착을 위한 포대기 육아, 부모의 위계질서를 세워서 쉬운 육아를 한다는 '자동육아'… 뭐니뭐니 해도 요즘 대세는 수면교육, 그 중에서도 분리수면일 테다.


"아기는 요즘 잘 자?" 아이가 없는 친구들도 내게 이렇게 안부인사를 물어온다. 아이의 수면이 양육자의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도 짐작 가능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제때, 충분히 자지 않는 아기는 양육자의 삶을 망가뜨린다. 그건 다시 아기의 안전을 위협한다. 그치만 신생아는 정말 자주 깬다. 깨서 운다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고문은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잠을 못 자면 사람은 죽는다. 정말로 죽는다. 어제는 이런 글을 읽었다.


미국 국방분석연구소(IDA)에서 잠에 구애받지 않는 군인, 즉 24시간 전쟁에 투입 가능한 군인을 만들 수 있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완패였다. 인간의 탐욕이 가장 적나라하고 맹렬하게 들끓는 군사 분야에서 실패했다면 대안이 없다고 봐야 한다. 소중한 것들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선 자야 한다. (정희재, '춤출 때 춤만 추고, 잠잘 때 잠만 자기 위한 시도들', <릿터> 49호, p.18)


우리 부부는 생후 6주부터 수면교육을 했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소아과 의사들이 6주부터 시작하라고 해서다. 극도로 잠이 부족한 양육자가 아기를 안은 채 재우다가 사고가 벌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은 순간을 우리 부부도 몇 번 겪었다.


시작은 생후 6주가 되던 낮잠부터. 그날 우리 부부는 아기에게 생애 처음으로 훈육이란 걸 했다. 수면교육은 등을 대고 자는 훈련부터 시작했다. 울면 안아줬다가 다시 아기침대에 내려놓는 방식으로 등대고 자는 방법을 가르쳤다. 아, 인간이란. 자는 법도 배워서 익혀야 하다니. 커텐과 조명을 이용해 낮밤을 명확하게 구분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혼나보기만 했지 내가 애한테 뭘 가르치는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감격하고 있다가 내가 되려 호되게 혼났다. 피곤한데 등대고 자는 게 낯설어 잠들지 못한 아기는 울어댔다. 얼굴이 보라색이 되고 목이 쉬고 벽이 울리도록. 우는 아이를 안고 나도 눈물을 뚝뚝 흘려야 했다. "졸리면 제발 자, 아가." 그 무렵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이었다.


태어난 지 40일 무렵. 아가를 키우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너무너무 아가 시절이라 내가 지나치게 고지식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돌까지 아기를 안아재우느라 손목이 망가져버린 지인의 얘기에 다시 마음을 다잡곤 한다. 또 요즘도 가끔 아기가 잠투정으로 보챌 충분히 안아준다. 밤에 자야 낮에 힘껏 사랑해수 있다.


그럼에도 내게 숙제로 남아있는 단어가 있다. 분리수면. 침대만 분리하는 게 아니라 아예 자는 방을 분리하는 것 말이다. SNS에는 분리수면에 대한 찬양이 넘쳐난다. 아기는 얕은 잠과 깊은 잠을 넘나들며 잔다. 자면서 수시로 끙끙대며 용을 쓰고 가끔은 와락 울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다. 양육자는 잠을 설칠 수밖에. 분리수면이 수면의 질, 삶의 질, 양육의 질을 높여주는 해법이라고 SNS 속 부모들은 말한다.


출생율을 높이기에도 분리수면이 낫다. 아기랑 한 방에 자면 부부끼리 스킨십을 하기도 영 민망하고 불편하다. 안방에서는 우리 부부의 쪽쪽! 뽀뽀 소리가 실종된 지 오래다. 잠들기 전, 둘이서 입술을 메기처럼 벌리고 달 착륙 우주선마냥 조심스럽게 도킹하는 '음소거 뽀뽀'를 할 때마다 남편은 자꾸 분리수면 얘기를 꺼낸다. 쪽쪽이 물고 자고 있는 아가가 뭘 알겠냐만은.


분리수면을 망설이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다. '생후 1년까지는 영아돌연사 발생률이 높다'는 문장을 육아책에서 봐버렸다. 미국 소아과학회에서는 생후 1년까지는 아기와 양육자가 같은 방에서 자되 침대만 분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단다. 겁많은 초보 엄마는 잠을 설치는 쪽을 택하기로 한다. 좀 촌스럽게 보이더라도.


"애기엄마, 분리수면하세요?"


얼마 전 예방접종을 하러 간 병원에서 소아과 의사가 대뜸 물었다. "아뇨, 많이들 하던데 제가 분리수면까지 하기엔 마음이 약해서…" 나는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보지. AI시대에 2G폰을 쓰는 사람처럼, "네?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이 아니라고요?" 되묻는 사람처럼 내 자신이 아주 구닥다리로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사는 "잘하고 있네요" 하고 웃었다. "요즘 분리수면이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인 거 같던데, 의사들은 돌까지는 같이 자기를 권하고 있어요."


의사의 말을 훈장처럼 달고 집에 향했다. 남편에게 들려줘야지. 승전보를 손에 쥔 군인처럼 당당하게 걸었다. 걸으면서 스마트폰으로 홈캠 앱을 켰다. 홈캠은 텅 빈 아기침대를 비추고 있었다. 헉. 아기가 어디 갔지. 아기가 화면에 안 보이는 게 당연하다. 나는 아기 예방접종을 다녀오는 길이니까. 황당을 넘어 황망할 자경이다. 내 속도 모르고 아기띠에 감싸진 아기는 바깥 구경이 좋은지 발을 동동 구른다.


아기의 안전을 앞세웠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다. 아직 내가 아기와 분리될 자신이 없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집앞 산책을 나가서도 휴대폰으로 유튜브 대신 홈캠을 보고 앉아 있다. 이 무슨 질척이는 옛 연인 같은 짓인지. 나는 마음속으로 자꾸 아가를 향해 문자메세지를 날린다. "뭐해? 자니?" 산후조리원에서 아기의 몸에 붙어 있던 탯줄 찌꺼기가 떨어지고 배꼽이 생겼을 때는 "제대 탈락! 축하드립니다" 적힌 탯줄 봉투를 들고 남몰래 당혹스러웠다. '우리 둘이 이제 완전히 분리돼버렸구나.'


육아를 하면서 간절한 건 '혼자'라는 감각이다. 혼자 훌쩍 산책을 나가거나 집앞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거나 여행을 가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고요한 반신욕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아기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 이 아기의 안전이 온전히 내게 달려 있다는 책임감이 나를 짓누를 때가 많다. 산후조리원에서 집에 돌아와 아기와 둘이 낮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자 매번 같은 악몽을 꿨다. 급한 사정으로 아기를 집에 두고 혼자 잠깐 나왔다가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는 내용의 악몽이 반복됐다. 등장인물과 배경만 바뀌고.


아기와 분리되기를 불안해하는 마음은 아직은 사랑보다는 책임감이나 공포에 가까운 것 같다. 어쩌면 1년이라는 시간은 아기가 튼튼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이 씩씩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일지도. 언젠가 네가 혼자 집밖을 나서고, 여행을 떠나고, 너만의 집을 꾸리는 때도 올 텐데. 엄마에게도 연습이 필요할지도. 그래, 연인 간에도 1년 사귀면 1년은 솔로로 지내는 게 예의라던데(이건 별로 실천하면서 살지 못했지만…). 우리가 한몸이었던 시간이 얼마인데. 아가, 나랑 좀만 더 같이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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