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제가 돌준맘이라고요?
돌준맘에서 돌끝맘까지
"근데 돌잔치 준비는 하고들 계신가요?"
지역 엄마들 모임 톡방에 누군가 물었다. 그녀의 아기는 2월생. 2025년 2월까진 아직 반년이나 남았다. 난 늑장 부리느라 백일상도 아직 안 차렸는데. '유난스러운 파티광 엄마군' 생각했다. 쥐뿔 몰랐다. '돌준맘'의 세계를.
돌준맘. 돌을 준비하는 엄마라는 뜻이다. 아이의 돌을 앞둔 엄마가 돌잔치와 스튜디오 사진, 이를 위해 갖춰져야 할 아기 의상, 부모 의상, 장소 대여, 부모 메이크업, 식사 준비와 답례품 준비, 사진 작가 섭외, 성장영상 제작 등등등...을 준비한다는 의미다. 이 대업을 마치고 돌을 다 치르면 환호를 담아 스스로를 '돌끝맘'이라 부르기도 한다. 돌 숙제를 끝낸 엄마.
'돌준파' '돌끝파'라는 말이 상대적으로 희소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과정은 대부분 엄마들의 몫이다. 육아휴직 중이거나 주부여서일 수도 있다. 주양육자가 된다는 건 아이의 각종 세레모니의 플래너를 도맡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준맘의 시계는 일찍부터 돌아간다. 4월생인 아기도 슬슬 준비해볼까 해서 돌잔치 장소로 유명한(프로포즈 성지이기도 하다) 한남동 라쿠치나에 예약 문의를 넣었더니 이미 주말은 풀부킹이라고 한다. 지금은 2024년 8월인데요... 저출생 사회라면서요... 대기를 걸어놓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결정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제일 먼저 초대 범위. 인원을 정해야 장소, 예산 등을 가늠할 수 있다. 결혼식도 스몰웨딩으로 한 우리 부부는 직계 가족만 모여 돌을 치르기로 결정을 했는데, 그럼 집에서 할 건지 밖에서 할 건지, 외식이라면 자체적으로 준비한 돌상이 있는 음식점으로 할 건지, 그 음식점서 하되 외부 돌상 업체에 맡길 건지, 아예 별도 음식점을 빌릴 건지, 호텔에서 할 건지 등등... 정할 게 끝도 없다. 흡사 두 번째 결혼식이다.
겁에 질린 내게 남편은 사람들이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고 했다. SNS에서 돌잔치 그만 좀 찾아보라고.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집에서 가족끼리 간단하게 축하 자리를 가질 것이며, 우리도 집에서 하는 게 훨씬 간편하고 경제적이며 나중에도 추억이 될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사람들이 집 마당 대신 예식장 결혼식을 하게 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단 집이 좁지 않은가... 애 키우는 집답게 꼬꼬맘 장난감이 아기매트 위에 굴러다니는 거실에 돌상을 차리려면 잔치 전후에 대대적 청소가 필요할 테다. 기껏해야 네 명짜리 식탁을 가진 집인데 열명 넘는 어른들은 어디 앉히고. 음식은 배달시킨다고 해도 설거지는 누가 하나.
무엇보다 아기의 인생에 다시 안 올 세레모니를 '소시민처럼' 치르고 싶지가 않다...! 최대한 성대하게! 훗날 아기가 사진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지게!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기껏해야 한두 명. 이미 낳은 이상 아기는 사치재다. 육아의 평균선이 올라간 건 세상의 섭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편은 나를 자제시키느라 바쁘다. 아기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게 아기의 모든 순간에 최대치의 가정 예산을 편성한다는 의미가 돼서는 안 되니까. 현대인 특유의 과시와 전시 욕구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이다. 그치만 나는 아기를 과시하고 싶은 걸... 빚내서 잔치하는 것도 아니고, 감당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뽀다구'는 내야 하는 걸.
식탁에 앉아 밤샘토론을 할 기세다. 이럴 때 남편의 입을 다물게 하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좀 치사하지만. "돌은 아기 탄생 1주년이기도 하지만 내 출산 1주년이기도 해. 나는 출산과 육아로 고생한 1년을 화려하게 치하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 쩝. 남편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억울하면 네가 낳던가!
종로의 근사한 프렌치 레스토랑을 대관하고, 돌상 업체도 섭외 완료. 이제 스냅사진과 의상 등등을 알아볼 차례. 요새는 죄다 홈페이지 대신 인스타그램만 운영해서 포트폴리오는 보기 좋은데 비용 문의를 일일이 넣어야 한다. 결혼시장 깜깜이라고 업체들 가격 공개하도록 의무화한다는데 진짜는 돌 시장이다. 돈이 줄줄 새는데 좀 신나기도 한다는 점도 결혼 준비랑 꼭 닮았다.
내가 보는 SNS 속 돌잔치, 채광이 근사한 공간과 그곳에서 잘 갖춰입고 있은 채 환히 웃고 있는 가족들이 극히 일부 사례라는 걸 나도 안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많은 이들이 허덕인다. 그런데도 그 극히 일부에 내 아기가 안락히 속해있기만을 바라게 되는 이 마음. 나의 무리가 아기에게는 평범이 되기를 바라는 나. 너무 유난스럽고 이기적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