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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 Aug 12. 2024

백일의 기적? 백일의 기절!

100일이면 곰도 사람이 된다

"백일까지만 버텨봐…" 일찍이 육아 선배들은 그렇게 말했다. 이른바 '백일의 기적'이 온다고 했다, 육아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백일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 벌어졌다…! 90일 즈음 아기는 갑자기 저녁 맘마를 더, 더더 달라고 보채더니 양껏 먹고 배가 부른 효과인지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110일이 갓 넘은 요즘에는 8시쯤 잠들어 아침 7시 반쯤 깨는 새 나라의 어린이로(aka 효녀) 지내는 중이다. 물론 아기는 로봇이 아니므로 새벽에 한 번씩 깨서 하품하는 엄마를 향해 방긋방긋 웃어보이는 공포체험도 간간히 시켜주고 있다.


100이란 숫자는 대체 뭘까. 100일이면 곰도 사람이 된다더니. 100일이 지나자 아기는 놀라운 도약을 보여준다. 가장 놀란 건 낯가림. 태어난 지 96일 되던 날 친정엄마의 품에 안겨 소황제처럼 집안을 누비시던 아기는(가만히 안고 있으면 나를 데리고 움직이라고 배를 튕겨댄다…) 딱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온 친정엄마를 보고 입술을 삐죽삐죽거렸다. 그 모습에 반한 할머니가 안아들자 집안 벽이 울리도록 대성통곡을 했다. 다시 엄마가 안자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다. 낯가림의 시작이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한다는 건 엄마를 알아본다는 의미다. 엄마는 또 그게 그렇게 감동이다.


그야말로 '눈도 못 뜬' 신생아 시절은 지나갔다. 지나간지도 모르는 사이에. 아기는 이제 눈이 트여 모빌을 즐기고, 외출을 나가면 눈이 휘둥구레해져서는 낮잠마저 잊고, 저를 향해 웃어주는 사람을 따라 웃는다.


아이가 눈이 트이자 육아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간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아주고… 흡사 '아기 키우기 타이쿤' 같은 단순반복의 육아를 (그것조차 간신히) 해왔다. 아가에게는 비밀이지만, '이건 반려동물 키우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 하는 생각도 속으로 조금 했다. 이제는 다르다. 아가는 말간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온몸으로 흡수 중이다. 끊임없이 말을 걸고, 새로운 장난감을 조달하고, 손과 발에 새로운 촉감을 제공해야 할 책임이 내게 생겼다. 이건 이것대로 힘들잖아요, 선배님들.


아가는 요새 뒤집기 연습이 한창이다. 얼마나 열심인지 보고 있으면 궁둥이를 살짝 쳐주고 싶은 욕구를 누르느라 힘들다. 이거 이렇게 한 번만 톡, 하면 성공할 거 같은데… 하지만 참아야지. 이건 네게 주어진 과업이고, 너의 성취여야 하니까. 분에 못 이겨 왕왕 우는 아기를 달래며 알아듣든 말든 말한다. "아가, 서러워 하지마. 엄마는 지금 선행학습을 자제하는 중이야"


임신 중에 지인이 내게 "아기를 계획한 거야, 들이닥친 거야?" 물었다. 아무래도 2세 계획과는 담을 쌓고 사는 듯 보였으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는 계획임신이라는 내 말에 '어떻게, 왜 그런 결심을 했느냐'고 정말 순수하게 신비함을 담아 물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답했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요."


30대 중반.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노화뿐이다. 엄살이 심한가? 게으른 나는 이제 삶의 궤도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지금 살고 있듯이 앞으로도 고만고만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계속해서 노력하겠지만, 청소년기에 경험했던 만큼의 눈부신 도약이, 글쎄, 다시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나의 시간은 천천히 하강할 테다. 아기의 삶은 다를 것이다. 모든 순간이 새로울 것이다. 처음 기고, 걷고, 말하는 그 시간들을 구경만 해도 설렐 것이다. 태양을 볼 때처럼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날 것이다.


아기의 성장이 너무 빛나서, 나는 '나의 성장을 너에게 위탁하지 않을게' 속으로 다짐하곤 한다. 네 성장을 내 성장으로 착각하거나, 내 성장을 네게 위임하지 않겠다고. 퍼질러 앉아 있지 않기 위해 갓난아기를 키우는 와중에 주2회 전화영어를 하는 미친 짓도 해보는 중이다.


어제는 거진 1년 만에 미용실을 갔다. 방치된 머리칼을 보고 미용사는 얼마 만에 오는 거냐 물었고, 나는 스스로에 무심한 사람 혹은 죄수… 부랑자… 같은 것으로 오해받고 싶지 않아 내 몸으로 아기를 낳고 먹이느라 염색이나 파마를 참았다고 말했다.


네살짜리 조카가 있다는 그녀는 언니의 고생을 너무나 목격해버려서 아기 생각이 없어졌다고 내게 말했다. "아이고. 몰라야만 저지를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알아버리셨네요." 내 말에 그녀가 비장하게 말했다. "엄마의 어떤 시간과 마음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아이고. 그걸 알아버리셨구나. 그녀를 포섭하긴 영 힘들겠다는 생각에, 나는 아기를 낳기로 결심하기 전 내게 그토록 듣기 싫어하던 그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진짜 힘들긴 한데, 진짜 좋거든요…"


아기를 키우면서 매일 내 몸과 마음의 바닥을 확인하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아기를 대하는 내가 너무 형편 없어서 눈물이 난다. 무지하게 힘들다. 근데 또 무지하게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VRXw6h4oe5Q


이 신비한 아이러니를 육아경험자는 공감할 것이다. 공익광고협의회도 저출생 해결을 위해 이 아이러니를 찬양하고 나섰다. 문제는 이 광고가 아이를 안 낳고 키워본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다는 것이지만.


아기가 내 성장에 걸림돌이 될 거 같아 출산을 망설이다가, 성장이 그리워 아기를 낳기로 했다가, 너의 성장을 응원하다가, 나의 성장을 염려하는 나날. 복잡다난하다. 원래 아프면서 크는 법이니까. 그렇게 너와 나의 시간이 서로를 자라게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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