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언니가 아기 키우는 걸 보고 애 생각이 싹 사라졌어요."
며칠 전 머리를 맡긴 미용사가 했던 말. 머리를 맴돈다. 설거지를 하다가, 기저귀가 축축해 울지만 기저귀 갈이대에 눕히는 건 또 싫은 애기의 울음을 달래다가, 거울 속에서 애기 침에 절은 옷을 입은 채 푸석한 내 얼굴을 보다가, '아, 이런 모습을 말하는 건가?' 생각한다.
그녀는 친언니가 조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을 "지나치게" 가까이서 봐버렸다고 했다. 형부가 야근이 잦아 친언니가 밤마다 울며 전화를 걸어왔고 언니가 걱정된 그녀는 언니 집에 들어가 석 달 동안 함께 살며 아기를 같이 키웠다고. 그 결과 그녀는 딩크족이 됐다는 무시무시한 결말이다. 신생아가 100일간 양육자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생각해보면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아마도 그때 나의 몰골은 딩크족인 그녀에게 훌륭한, 또 다른 새로운 근거가 돼주었을 거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통과하면서 새치가 무섭게 늘었다. 애기에게 해가 될까 염색을 하지 않은 머리는 엉망으로 방치돼 있었다. 그녀는 육아의 고됨을 이해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자신은 아기를 낳을 엄두가 나지 않고, 그래서 낳지 않을 거라고. 그녀가 나를 위안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저는 괜찮은데요... 그냥 머리에 무감한 사람으로 오해할까봐 애기 이야기를 꺼낸 거였는데.
"뭐야, 애기 엄마한테 왜 굳이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녀의 말을 전해들은 남편은 질색했지만, 나는 다음에도 그녀에게 머리를 맡길 것이다. 남편아, 당신의 아내도 한때는 딩크족이었다... 그녀가 지금은 딩크족이지만 마음이 바뀌어 우리 편(?)으로 넘어올 거라 믿는다는 말이 아니다. 딩크족이 취하게 되는 자세를 십분 이해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새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쏙 든다. 솜씨 좋은 미용사였다. 그녀가 완성한 머리스타일은 아주 흡족하고, 심지어 집에 와서 손질하기도 편해 매일 머리를 감고 말릴 때마다 감탄한다.
애 엄마가 되고 보니 딩크족과 대화하는 게 퍽 난감하다. 상대는 잔뜩 날이 서 있다. 애기 엄마가 애기 이야기를 꺼내면 "애기 있으세요?" "애기 진짜 예쁜데." "낳을 거면 젊을 때 낳는 게 나아요(나도 진짜 듣기 싫었던 말인데 옳은 말이다...)" 출산 장려 훈화 말씀이 이어질까 지레 방어 태세를 취한다. 딱 임신 전 나다. 너무 많은 무례에 단련된 자세. 당신이 무례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먼저 약간의 무례를 저지르겠다는 전략. 그 마음을 이해한다.
딩크족이었던 내가 눈뜨고 보니 애기 엄마다. 내가 애를 낳았다고 남들에게 애를 낳으라고 권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자꾸 딩크족들은 나를 경계한다. 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장이 아닙니다, 딩크족 여러분...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나를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안다는 뜻이다. 우울할 땐 샤워를 하고, 조금 무리한 것 같으면 몸살이 걸리기 전에 약속을 취소하고 드러눕는다. 이건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내일의 내가 몸져눕더라도 친구를 만나 성수동을 걸어야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 그런 시절도 있었지. 가정생활도 마찬가지.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아기를 가졌고 단짠단짠 육아생활 중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부부가 애를 낳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애기 생각 없으세요?" 딩크족에게 출산을 권하는 게 무례라는 데는 이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중인 듯 싶다(혹은 효과가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는지도.) 거꾸로 출산 가정에게 딩크의 단출한 행복을 설파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즐겁게 민트초콜릿 아이스크림 먹는 사람에게 굳이 "으, 그냥 치약을 먹지 그래?" 말할 필요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