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냉장고 안에는 손끝만 스쳐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맥주병이 세 병 잠들어 있다. 벌써 두 달째 냉장고 안에 서 있는. '히야시'가 제대로 돼버린.
매일 아침 계란을 꺼낼 때마다, 모유수유를 중단하면 저 놈들을 모조리 잡아먹으리라, 아기가 50일만 되면 분유를 먹이리라, 그날 밤 바로 저 세놈의 모가지를 모조리 따리라, 눈알을 부라렸다.
하지만 아기가 백일이 넘도록 나는 '단유할 결심'을 세우지 못했고 맥주병들은 오들오들 떨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이놈들, 두고 보자…
임신과 출산은 나의 신체 구조 이곳저곳을 비가역적으로, 비극적으로 바꿔놓았다. 딱 하나. 간 건강만 빼고. 술을 안(못) 마신 지 1년. 성인이 된 이후 간이 이토록 순수한 적이 없다.
나의 주량은 소주 1병.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 딱 좋은 수준이다. 그러니 마셔야지. 대학시절부터 술자리라면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어쩜 직장도 술자리가 잦아 입사 이후 줄창 질리도록 부어라 마셔라 하며 살았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과 저녁 반주가 또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마셔야지. 그 결과 몸무게는 우량주 차트처럼 우량하게 우상향했고 건강검진 문진때마다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임신을 준비하며 남편과 함께 저녁 반주를 끊었다. 계획임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건소에서 나란히 산전검사를 받고 매일 엽산을 챙겨먹으면서 술병을 딸 뻔뻔함은 없었다. 그러다 작년 여름, 휴가를 떠난 일본에서 우리는 주류 무제한인 료칸에 묵게 되는데… 그것이 최후의 만찬이었다.
술을 안 마시는 어른의 삶이란 퍽 새로운 것이었다. 처음에는 각종 술자리가 곤혹스러웠다. 대한민국은 과연 술 권하는 사회였다. '저녁 먹자=술 마시자' 전제 속에 산 지가 오래되어 식사 메뉴나 식당을 정하기도 까다로웠다. 회식은 최악이었다.
곧 나는 말똥한 정신으로 정신이 허물져가는 동료를 구경하는 데서 나름의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야 술자리의 블랙박스. 회식 다음날 귓속말로 자잘한 실수들을 골려주면 동료들은 (선배들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뭐라고 반격하는 순간 "어? 애기가 듣고 있는데?" 하면 두 배로 골려줄 수 있다.
술 안 마시는 어른의 이점도 컸다. 무엇보다 시간이 확보됐다. 가고 싶지 않은 약속은 단칼에 거절했다.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상대도 거절을 쉽게 받아들였다. 일단 막역한 사이가 아니면 임산부를 잘 불러내지 않는다. 자연스레 약속이 줄었다. 그게 서운한 순간도 있었지만, 차츰 내 삶이 정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연의 정수, 진짜 친구가 가려내지는 느낌.
친한 사이는 술 없이도 재미있게 떠들 수 있고, 맑은 정신으로 충분히 진솔하고 더 정확하게 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술 때려먹고 다음날 멋쩍게, 혹은 술기운에 내지른 문장들이 말실수가 아니었을까 전전긍긍하며 연락할 필요도 없었다. 따뜻한 차를 나눠 마시면 약간의 취기처럼 몸에 온기가 돌고 긴장이 풀리면서 농도 진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확보된 시간에는 남편, 그리고 나 자신과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거나 밤산책을 하고, 한강을 걸었다. 깜깜한 거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차를 마셨다. 몸을 데우고 스트레칭을 했다. 일기를 적었다. 돌이켜보면 '바깥순이'가 '집순이'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갓난아기와 한동안 집안에서만 씨름해야 하는 시간을 예습이라도 하는 듯이. 최후의 만찬보다 달콤한 최후의 휴식이었다. 아기야,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임신과 출산으로 또 하나 멀어진 옛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스마트폰이다. 2011년 첫 스마트폰을 산 이후, 우리 사이가 이렇게 소원했던 적이 있었나. "휴직하시더니 이제 카톡 답장이 늦네요."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온 지인이 웃었다.
요즘은 카톡 알림이 떠도 곧장 확인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아예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휴대폰을 두기 일쑤다. 아예 충전기에 꽂아둔 채 잊고 지낸다. (급한 일이면 전화하겠지…가 가능한 휴직자의 삶 최고다.)
임산부때는 손목터널증후군(임신하면 릴렉신호르몬이 많이 나와 관절 주변 근육과 인대가 느슨해진다. 출산을 준비하려 골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인데, 다른 관절까지 약해진다)과 전자파를 조심해야 한다는 친정엄마의 잔소리로, 출산 직후에는 시력이 나빠지니 조심해야 한다는 아빠의 잔소리로(대체 왜 출산하면 시력이 나빠지는 걸까), 아기가 눈이 트인 뒤에는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피하려는 나의 근심으로 인해 인해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있다.
낮에 심심하면 스마트폰을 집어드는 대신에 아기를 안고 콤콤한 아기 냄새를 맡는다. 함께 산책을 나가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걸 감각한다. 배롱나무 앞에 멈춰서서 "아가야, 엄마가 좋아하는 나무야." 말해준다. 거실에서 함께 음악을 듣거나, 집에 걸어둔 그림을 새삼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리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비속어 없는 대화를 나눈다. 이런 순간들이 내 뇌를 씻어내고 있다는 걸 안다. 물론 지친 육체는 심심할 틈이 거의 없지만.
흉터처럼 남은 튼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임신선, 늘어진 뱃살, 삐그덕거리는 골반, 아치가 무너져 평발이 돼버린 발… 임신과 출산이 바꿔놓은 몸은 경악스럽다. 복구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더더욱. '출산은 여자의 몸을 망가뜨린다'는 말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치만 내 몸의 어딘가는 분명이 정화되고 있다. 이 시간들이 나를 망가뜨리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