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밤 10시 28분. 아기를 재우고 소파에 널부러져 쇼츠를 보고 있는데 휴대폰 속보 알림이 떴다.
[속보] 尹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뭐? 소파에서 튕기듯 몸을 일으킨 나는 남편에게 당장 짐을 싸야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쟁이 난 줄 알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이 있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설마 2024년에 계엄령을 선포할 리가.
그런데 그 설마가 진짜로 일어난 것이다. 아, 30년 넘도록 살아도 세상은 이렇게 늘 새롭고 짜릿하게 엉망이다.
그 밤, 무려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1호가 카톡을 타고 여기저기 전파되던 순간, 일체의 정치적 활동을 금하고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정부가 선언한 그 밤, 국회로 군인들이 밀고 들어가고 시민들이 그걸 막아서던 그 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인터넷으로 분유를 주문하고 있었다. 지금 사면 제대로 배송은 될까 걱정하면서. '단유하지 말 걸. 그냥 모유 계속 먹이면 내 체력을 헐어서라도 애는 먹일 수 있을 텐데.' 생각하면서.
그 당시 나는 이대로 계엄령이 해제되지 않으면 정말이지 나라가 뒤집힐 거라 생각했다. (국회의 의결 뒤에도 대통령이 그걸 받아들일 거란 확신이 없었다. 계엄령을 선포한 마당에 그의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그 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저녁 7시 무렵 잠이 든 아기는 유난히 곤히 자서 엄마와 아빠의 수선에도 뒤척거리지조차 않았다. 자는 아기와 휴대폰 화면을 번갈아 보면서 카톡과 텔레그램으로 전파되는 계엄령 관련 소식을 정독했다.
나와 밤을 함께 새운 동지들은 동네 '용띠맘'들이었다. 올해 아기를 낳은 갓난쟁이 엄마들. 우리들은 각자 집에 분유와 생수, 이유식 재료 같은 것이 각자 얼마나 있는지 공유하면서 비상상황이 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런데 잠깐만. SNS도 언론에 해당되는 걸까? 이것도 곧 막히게 되는 걸까? 어느 엄마의 말에는 얼마간 아무도 답장하지 못했다.
계엄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놀랍게도 12월 7일, 국회에서 탄핵 표결이 이뤄지지 못했다. 대신에 당과 협의해 국정을 운영하고 질서 있게 퇴진한다는데. 누구 마음대로, 무슨 근거로 의원내각제 흉내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의원내각제에서도 행정부 구성은 다수당이 하는 거 아닌디요. 익숙한 분노와 좌절을 오가며, 아기가 이다음에 크면 아이가 태어난 해에 벌어진 이 절망스러운 광경을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심한다. 이 상황을 내가 간신히 요약하는 문장은 이런 식이다. "왜 저래, 진짜."
그러나 역시나 익숙한 희망이 있지. 2016년 겨울에 그랬듯 사람들은 시위 현장에서 서로를 살뜰하게 챙기고 있는 모양이다. SNS에는 시위 현장에서 인류애를 회복하고 어른들의 귀여움을 발견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온다. 차마 갓난쟁이와 겨울날 시위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 나는 그것들만 들여다보고 있다. 시위에 다녀온 얘기를 들려주는 친구들에게 기프티콘이나 보낸다.
2016년 탄핵 시위 현장에서 미혼이었던 나는 '유모차 부대'를 보며 감탄했지만 이제는 경탄한다. 추위, 인파(차로 이동할 수 없고 대중교통조차 붐비는), 소음, 무력충돌 가능성… 시위 현장의 모든 것들이 갓난쟁이와 함께 하기에는 최악의 조건들이다.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은 그럼에도 그곳에 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안다. 아기를 낳고 알았다. 내 새끼 살아갈 세상을 망가뜨리는 놈들은 봐줄 수 없다.
왜 저래, 진짜! 어떤 소식들은 가뜩이나 호르몬이 불안정한 애기엄마를 뭉클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20대 청년들이 응원봉을 들고 나와 소녀시대와 데이식스 노래 같은 걸 부르며 핫팩을 나눠갖는다는 얘기 같은 것들. 이런 풍경들도 애기에게 들려줘야지. 날이 조금 순해지면 아기와 함께 여의도로 나가보는 용기도 내볼까. 아니지. 그 전에 이 사태가 '헌법적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