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되지 않는 껌딱지
어마무시한 엄마껌딱지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어느덧 10개월에 접어든 아기는 분리불안을 겪는다. 주양육자와 제대로 애착 형성이 된 아이는 주양육자와 떨어지기 싫어한다. 아직 대상영속성(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중이므로.
안다. 머리로는 아는데... 요새 이 껌이 너무 무겁다.
아기는 잘 때도 먹을 때도 놀 때도 엄마 반경 1m 내를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엄마는 벗어나지 못한다. 화장실을 갈 때조차 벽이 울리도록 울어댄다. 결국 화장실 앞에 아기를 앉혀두고 문을 활짝 연 채 대변쇼를 벌인다. 이런 건 인터넷 속 도시전설인 줄 알았는데. 조금이라도 아기와 틈을 벌리고 싶어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 낯가림에 엄마껌딱지 증상은 더 심해진다. 아기를 거실에 두고 주방에 물이라도 마시러 가면 몸을 뒤집으며 울어제껴 손님이 혼비백산 도망을 친다.
아기가 깨있는 동안 엄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심지어 아기를 위해 이유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는 일도.
낮잠을 잘 때는 엄마가 꼭 옆에 있어야 하고, 자다가 고개를 번쩍 들고 엄마가 여전히 있는지 확인한다. 잠의 세계는 오로지 혼자 감내해야 하는 시공간인 걸 알아버린 걸까. 아니면 자신이 잠들면 엄마가 스르르 방을 빠져나가 "육퇴!"를 외치며 맥주캔을 딸 걸 안 걸까. 아기는 엄마의 옷이나 머리카락을 붙잡은 채 잠에 든다. 엄마가 강제로 밀어넣은 애착인형을 머리에 벤 채.
오늘은 유난히 잠투정이 길었다. 곁에 누운 엄마에게 2시간째 몸을 부비는 아기의 살결을 느끼며 나는... 나는... 구토감이 일어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이게 맞나?
싫었다. 좋지 않았다. 원치 않는 강도와 빈도와 방식으로 끝없이 스킨십을 하는 아기를 매몰차게 밀쳐내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인내했다. 이게 맞나? 엄마가?
엄마가 되기 전 나는 아기에게 사랑을 줄 각오만 했다. 사랑을, 폭격에 가까운 사랑을 받아낼 각오도 했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혼자만의 순간이 중요해 결혼 후에도 휴가지에 이틀쯤 먼저 도착해 홀로 시간을 보내던 사람인데... 아기에겐 내가 세상이라서.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갑자기 온 우주가 사라진 거라서. 화장실로 떠나버린 엄마를 찾느라 아기는 목이 쉬도록 울어대고, 나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하필 이런 날 남편은 야근이다. 시간이 약인 걸 알면서 또 인터넷에 '분리불안 아기' '분리불안 극복법' 같은 걸 부질없이 검색한다. 그러다 어느 글을 읽었다. 이 시기는 고작 몇 개월이라고. 곧 아이에게 엄마가 모르는 비밀이 생기고, 아이는 방문을 잠그고 입을 잠글 거라고. 아이에게 엄마가 세상인 시기는 이제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내일은 또 내일의 어금니를 악물겠지만. 오늘은 이 문장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내가 누군가의 세상이 되는 나날은 지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