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형성 작업 중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생성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 중이다. 아이의 영혼 말이다. 너무 종교적이거나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이런 표현은 어떨지. 아이는 자아를 형성하는 중이다.
'너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신생아 시절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아기를 보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가끔 얄미운데… 사람인가?
신생아는 그저 엄마가 눕혀주면 눕혀주는 대로 누워 있다. 의사표현을 하는 거라고는 배고플 때와 졸릴 때, 그런데 그 욕구가 충족이 안 됐을 때. 수시로 잔뜩 찡그리며 빽빽 울어대지만 그건 의지보다는 본능의 영역이었다. 움직이는 모빌을 따라 눈알을 굴리거나 엄마와 눈을 맞추고 웃기까지 한두 달이나 걸리는 줄 아기를 낳아 키워보기 전까진 몰랐다. 그러니까 인간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되게 시끄러운 물만두… 같았다.
태어난 지 약 10개월. 아기에게는 이제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무서워하는 것, 만지고 싶은 것과 피하고 싶은 것이 많다. 본능에 따라, 엄마가 주는 대로 배를 채우던 시기는 지나가 버렸다. (이렇게나 빨리?)
요즘 아기는 숟가락질을 직접 하고 싶어 한다. 엄마가 이유식을 떠먹여줄 때마다 팔을 뻗어 '이이! 이이이익!' 소리를 내며 숟가락을 뺏으려 든다. 그걸 조그만 손에 쥐어주면 당연히 그날의 식사는 (너 혼자) 신나는 촉감놀이 시간으로 변질되기 때문에, 엄마는 회유한다. 숟가락을 비행기도 태워보고 다른 새 숟가락을 가져와 아기에게 쥐어줘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것은 정확히 엄마가 쥐고 있는, 이유식이 얹어진 '그 숟가락'이기 때문에,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아기는 끝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다른 손으로 만지고 머리카락에 비벼댄다. 그리고 자신의 전리품을 꼭 쥔 채 팔을 허공에 번쩍 든다. '내가 이걸 마침내 가졌어!' 뽐내듯이.
요컨대 아기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중이다.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주 웃는다. 우는 것이 본능의 영역이라면, 웃는 것은 의지와 선택의 영역이다. 라는 명제를 아기를 키우면서 익혔다. 그녀는 어떤 것들을 좋아하기로 해서 그것들을 향해 웃는다. 예컨대 엄마.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정말 CF에 나오는 아기 웃음 효과음처럼 웃는다. 꺄르륵 꺅꺅 하고 소리내 웃는다. 그러면 나는 그녀와 또 다시 사랑에 빠지고 만다.
'꼭 내가 아니어도 될 것 같다.' 아기가 아직 물만두이던 시절, 나를 가장 괴롭게 하던 생각이었다. 이 핏덩이의 욕구를 채워주는 건 내가 아닌 누구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반드시 나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그러니까 아기와 24시간 씨름하며 헌신해야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데 내가 나의 시간과 건강과 젊음과 감정을 갈아넣고 있는 것만 같다는 감각. 30년 넘게 자라며 비대해진 자아를 초라하게 만드는, 원초적인 나날. 너를 떨어뜨릴까 온몸에 힘을 준 채 네 똥을 씻기는 이 순간을 너는 평생 모르겠지. 알 필요가 없지. 나는 너를 낳기로 택했지만 너는 나를 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당연하지만 무서운 진실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나를 향해 웃는다. 웃기로 결정한다. 자주 울기로 결정하기도 하지만. 너가 너 자신이 되어가는 중요한 과정 중에 나를 향한 애정의 자리를 마련해주다니. 놀라워라. 자아와 함께 발현되는 사랑이라니. 아기가 "음마!" 하고 외칠 때 그 소리는 의미 없는 입술 마찰음에서 벗어나 정확히 나를 부르는 언어에 가까워지고 있다. 조금씩. 하루 아침에 '엄마!' 하고 외치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그치만 분명하게 나를 향해 다가오는 언어. 그러면 나는 영혼의 존재를 조금씩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