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젊음이 흘러서 너에게 간다

근데 좀 천천히…

by 무화과

요새 나의 화두는 단연 '노화'다. 정희원 교수가 설계한 저속노화 도시락을 편의점에서 파는 마당에 노화가 나만의 화두겠냐만은. 노화라는 단어에 아주 곤두선 상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은 뒤로 내가 폭삭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뱃속의 아이는 열 달 동안 나의 양분을 착실하게 뽑아먹으며 자랐다. 나는 사실 열 달 동안 그러기만을 바랐지. 아이는 뱃속에서 나오고 나서는 울고 불고 나를 낮밤으로 못 쉬게 했다. 잠들지 못하도록 했다. 수면부족이 사람을 얼마나 늙게 만드는지 거울 앞에서 나날이 배운다. 잘 수 있다면 반드시 자야 한다. 정희원 교수도 늘 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아이가 통잠을 잔 뒤에도 나는 못 잔다. 안 잔다. 아이가 잠들면 그제야 나의 자유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 자유라고 해봤자 마음껏 문 열고 화장실 청소하거나, 아기가 내일 우유를 먹을 빨대컵을 닦거나, 유튜브 숏츠나 손가락으로 넘기며 인생을 낭비하는 거지만… 암튼 그런 일들을 사부작대느라 늦게서야 침대에 눕는다.


그런 밤에 유튜브에서 이런 영상을 봤다. (숏츠로 대충 인생을 낭비하던 중에 봐서 정확한 맥락은 모르겠지만) 애엄마들끼리 앉아서 출산 후 노화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나의 젊음은 사라지겠지만, 내 젊음이 너에게(아이에게) 흘러가서 너의 젊음이 빛나기를." 그의 말에 영상 속 애엄마들은 일제히 탄식했다. 더러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 와중에 '알겠는데, 좀 천천히…'라고 생각했다.


본격 더위가 들이닥치기 전까지, 지난달까지는 매일 오후 2시쯤 산책을 나갔다. 첫 번째 낮잠과 점심 식사를 마친 아기를 유아차에 태우고서. 매일 같은 시간에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 보니 그 시간대 산책자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옆동의 할아버지도 그 중 하나. 그는 편마비인지 거동이 불편해보였는데, 가족들이 매일 돌아가며 그의 말동무이자 산책보조이자 재활치료사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아기를 향해 한 번씩 "와, 아기다!" 반가운 티를 냈고 나는 목례하거나 "안녕하세요, 해야지~" 말 못하는 아기를 앞세워 적당히 인사한 뒤 자리를 떴다.


그날은 봄이었고, 산수유꽃이 한창이었다. 나는 유아차를 산수유꽃 아래에 대고 "이게 산수유꽃이야. 노랗지?" 하고 수선을 떨었다. 매일 보는 아파트 단지의 조경이랄 게 뻔하기 때문에 작은 변화도 반가웠다. 아마 그게 꽃이 아니라 노란 쓰레기더미였어도 나는 그 아래 유아차를 멈추고 손가락질하며 아기에게 큰 소리로 설명해줬을 것이다. 한참 그런 요란을 떨며 아파트 단지를 돌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이게 산수유꽃이지요?" 옆동 할아버지의 팔짱을 낀 채 그의 며느리가 노란 꽃나무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이거구나. 젊음이 흘러간다는 게. 인생이 흘러간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그 순간에 배웠다.


늙는다는 건 또 어려지는 것과 같다. 속이 병들고 치아가 망가진 늙은 인간은 간이 되지 않은 유동식을 먹는데, 아기가 처음 음식을 익히며 먹는 이유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겨우 걷고, 단어를 재차 익힌다. 늙어간다는 건 아기가 돼버리는 일과도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아차를 끌었다. 누구든 늙는다. 아기도 언젠가 늙겠지. 무탈하게 성장해 늙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 늙는다는 건 살아있다는 거니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글을 쓰는 내 얼굴에는 마스크팩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유치하다. 나는 여전히 노화가 두렵고, 젊고 싶다. 인스타그램에서 내 체형과 나이와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잔뜩 사서 한 번 입고 나가지도 못한 채 옷장에 처박아둔다. 'N년 전 오늘이에요' 이따금 클라우드가 들이미는 사진 속 어린 나를 부러워 한다. 그때는 너무 뚱뚱하게 나왔다고 SNS에도 안 올린 사진들인데.


그치만. 이 아까운 모든 게 너에게 가는 거라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젊음이 다름 아닌 너에게 흘러가는 거라면. 그건 아깝지 않다. 뭔들 아깝겠냐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