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Dec 08. 2020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기록하다

무기박람회 DX KOREA 저항 액션을 다녀와서


지금 내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나중에라도 다시 들여다보고 언어화할 수 있기 위해 기록해둔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얼마나 잘 기록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난 11월 18일 우리(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는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방위산업전 DX KOREA 행사장 안에 있었다. DX KOREA는 쉽게 말하자면 무기박람회다. 와우북페스티발을 떠올려보면 출판사들은 자기들의 상품(책)을 전시하고 관람객(독자)은 구경을 하며 마음에 드는 책을 사기도 한다. 때때로 관련 주제로 워크숍이나 강좌가 열리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무기박람회에서는 군수산업체들이 자기들의 상품(무기)을 전시하고 관람객(각 국 국방관련자, 때로는 독재 정권의 무기 구매자)들은 구경을 하며 마음에 드는 무기를 계약한다. 


행사장은 무기를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그리고 무기 산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과 양복을 입은 비즈니스맨들로 북적인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덜 북적였을 거다. 아무튼 그 행사장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기 산업이 활성화되는 데 큰 반감이 없으며 오히려 반기는 이들도 많았을 거다. 우리의 목적은 한마디로 행사에 깽판을 놓는 것. 시간을 정해놓고 행사장 안에서 갑작스레 퍼포먼스를 했다. 간단한 분장을 하고 피켓을 들었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구호는 외치지 않고 우리끼리도 거리를 뒀지만. 그곳에서 팔린 무기가 예멘 사람들을 죽이거나 난민으로 내몬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기를 사고파는 게 아니라 죽음을 사고파는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전쟁없는세상의 시그니처 직접행동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무기박람회 저항 액션. (사진 출처: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그 넓은 행사장 가득 찬 사람들 중에 과연 대부분은 우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었을 거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들이 가득한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 옆의 몇 사람 말고는 없다는 것, 심지어 저 사람들은 우리를 하나의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별 이상한 것들, 정신 나간 사람, 걸리적거리는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은 묘한 기분에 감싸였다. 


고립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따뜻했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이 행동하는 동료들이 만들어내는 온기였다. 하지만 그건 직접행동을 하면서 내 옆의 동료가 전해오는 체온에서 느껴지는 어떤 안도감이나 성취감이랑은 또 달랐다. 그 온기는 마치 핵무기가 휩쓸고 간 폐허의 땅에서 홀로 피어난 장미꽃처럼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나는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포근했고, 포근하면서도 우리 존재가 과연 이 공간에 제대로 존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고립감보다는 이질감이었고, 내가 느끼는 이질감보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묻어나는 이질감의 감각이 더 크게 다가왔던 거 같다. 


사회 보편의 상식, 혹은 주류의 논리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두렵진 않다. 줄곧 그래 왔으니. 거기서 오는 고립감이나 좌절감도 뭐 잘 해결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그 감정, 기분, 느낌은 뭐라고 설명이 안 된다.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 발전시켜야 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저 문득 내 안에 자리 잡은 감정이고 나는 이 정체를 알 수 없고 어디서 왔으며 왜 왔는지,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떻게 인지해야 할지도 모르겠을 뿐

이다. 


그래도 일단 기록을 해둔다. 이런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될지 아니면 그냥 이번 한 번으로 끝일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비슷한 감정이 나를 찾아왔을 때 이 글을 찾아 읽어보면 나는 그 감정에 이번보다는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따뜻한 방바닥이 포근한 새 사무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