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Dec 03. 2020

따뜻한 방바닥이 포근한 새 사무실

새 사무실에서 첫날. 포장이사를 했는데도,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다. 이제 몸의 퇴화를 걱정하고 몸을 돌봐야 할 때가 왔나보다. 그래도 이번 이사는 무척 수월했다. 포장이사여서 그렇기도 하고, 새 사무실을 알아보고 필요한 공사를 하고 이런 걸 내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다. 이사와 관련된 모든 일들은 나에겐 익숙하지 않고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부잣집에 태어나 이사 한 번 안 해본 거 같지만, 난 제법 많은 이사를 했다.


먼저 사는 집을 보자면 서울 쌍문동에서 방학동으로, 또 방학동으로, 그러다 화곡동으로, 부산 하단동으로, 광주 화정동을 거쳐 동림동으로, 서울 문정동으로, 부천 괴안동으로 이사를 다녔다. 이 이사는 모두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다닌 이사였고, 난 이사에 대해 신경쓸 게 없었다. 친구들과 헤어져 슬픔 마음을 돌보는 일 밖에는. 독립하고 나서는 파주 교하를 거처 운정 지금 집에 이제 10년째 살고 있다. 단 한번의 이사인데 임대아파트 신청해서 들어온 거라 부동산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병역거부자치고는 이감을 많이 다녀서 인천에서 군산으로, 수원으로, 청주로 다녔는데 이것 또한 이사라면 이사겠지만 집을 보러 다닐 일도 없고 이사 날짜를 계산한 일도 없으니 역시나 내 이사 실력에는 하등 도움이 이 안 되는 이사였다.


사무실 이사도 아주 적게 한 건 아니다. 출판사 다니는 동안에도 사무실 이사를 2번 해 봤고,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은 훨씬 여러번 해봤다. 늘 다른 단체와 함께 이사를 다녔고 그중 대부분 다른 단체에서 이사 일을 도맡아 해주었다. 내가 사무국으로 있을 때는 더더욱. 특히 이번 이사는 피스모모 아영이 건물 알아보고 입주 전 공사며 인테리어까지 다 하고 이삿짐 센터도 모모에서 알아봤다. 나로서는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을 안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새 사무실은 무악재역 초역세권이다. 역 출구에서 사무실 내 책상까지 5분도 안 걸린다. 이렇게 지하철역 가까이에서 지내본 적이 없다. 바닥 따뜻해지는 보일러가 인상적인 가정집이다.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는 건 사무실 건물보다야 불편하겠지만 어쩐지 아늑하고 포근한 기분이 드는 공간이라 마음에 든다.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어서 오래 있을 순 없지만 지내는 동안은 정 붙이고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까먹기 전에 기록해두는 전쟁없는세상 역대 사무실 


서울대 입구역 사무실(with 대항지구화행동,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처음 시작하는 단체 셋이 같이 썼다. 대항지구화행동 사무실에 전없세와 이룸이 더부살이하는 형태였고, 대로변 2층 사무실이었는데 2층 맞은편은 퇴폐이발소였다. 여기서 책상 두어개와 컴퓨터 두어개로 전쟁없는세상이 시작되었다. 


신림동 사무실(with 대항지구화행동,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신림역에서 주택가 쪽으로 한 15분 가량 걸어가는 곳이었다. 근처에 도림천이 있었고 도림천 농구 코트에서 자유투 던지고 캐치볼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아랫집(with 평화인권연대, 피자매연대): 전없세 활동가들이 줄줄이 병역거부로 감옥 가면서 남아있는 활동가 외로울까봐 당시 병역거부운동을 함께 하던 평화인권연대와 합쳤다. 서대문 선교교육원에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건물. 선교교육원 부지에서 가장 아래 쪽에 있어서 아랫집이라고 불렀다. 일제시대 때 지은 건물이라 겨울에도 바람이 잘 들었고, 기름보일러라서 우린 보일러 틀 엄두도 못냈다. 진심 감옥보다 추웠다. 평택 대추리 투쟁 열심히 할 떄였고, 나는 이 사무실 머무는 동안 감옥에 다녀왔다. 


망원동1(with 평화인권연대): 마포구청 역 근처 사무실. 이 사무실에 있을 때 이길준 농성을 치렀다. 함께 사무실을 쓰던 평화인권연대는 이 사무실 시절 해산했다.


망원동2(with 평화도서관, 주미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가장 오래 머문 사무실. 동교초등학교 바로 앞, 피아노 학원 윗층이었다. 오래 있다 보니 더부살이 하는 식구들이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평화도서관 나무, 전쟁없는세상,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깉이 있었고, 나중에 열린 군대를 위한 시민연대가 들어왔다. 평화도서관 나무가 나간 자리는 토닥토닥 협동조합이 들어왔다가 그 다음에 함께 쓴 분들은 시민단체는 아니었고 문화 기획을 하는 회사였다. 


서강대 사무실(with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동교초등학교 앞 사무실 집주인이 갑자기 돈독이 올랐는지 월세를 올려달라 했다. 건물 관리는 안 해주면서 월세만 올리는 게 싫어서, 그보다는 사무실 와서 계속 시비 거는 게 싫어서(예를 들면 세월호 집회를 비난한다든지) 이사를 마음 먹었지만, 돈도 없고 갈 데도 없었는데 예수회의 김정욱 신부님 소개로 서강대 옆 예수회 건물 지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2년을 있었는데 확실히 지하라 환경은 열악했지만 예수회의 배려로 돈을 아끼며 지낼 수 있었다. 심지어 월세를 다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나올 때 후원금으로 주셨다.


불광동 사무실(with 피스모모): 예수회에서 나와야 할 때 고맙게도 피스모모에서 손을 내밀어줬다. 당시 난 새 사무실을 구해야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피스모모가 정말 구세주였다. 다만 여러 이유로 록된 주소지와 실제 사무공간이 달라서 조금 불편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무악재 사무실(with 피스모모): 오늘부터 거주하게 된 사무실. 여기서 2년을 지내고 나가야한다. 동네 인프라는 불광동에 비해 뭐가 없지만 사무실이 아늑해서 좋고, 옥상도 쓸 수 있어서 좋다. 안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를 찾아볼 생각이다. (사진은 누가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사하는 날 사진)

작가의 이전글 검사의 저열하고 어리석은 질문에 답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