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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Nov 06. 2020

검사의 저열하고 어리석은 질문에 답함

병역거부자를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받게 하라


나를 움직이는 건 분노보다는 슬픔이었다. 철거민들을 쥐어패는 용역 깡패와 그들을 비호하는 관공서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라 그런 현실, 그런 풍경 자체가 너무 슬퍼서 나는 사회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노가 가시질 않는다.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닌데도 화가 가시질 않는다. 어제 어느 병역거부자가 보여준 검사의 질문지 때문에. 물론 재판 때는 변호인의 제지로 검사가 그대로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미리 준비한 질문 수준이 처참해서 화와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도 차분하게 할 겸, 그 질문지에 내가 한 번 대답해보기로 했다. 내 재판은 아니지만, 피고인 개인에 대한 심문이 아니라 '병역거부자'에 대한 심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래 7번부터 13번까지가 그 검사의 질문지이고 번외 질문 2개는 그동안 병역거부자들이 법정에서 판검사들에게 들었던 질문 가운데 엄선한 것이다.




7. 피고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한국군 '위안부'가 존재하게 된 이유와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8. 군사력에 불균형이 발생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가 발생한 것 아닌가요

네 아닙니다. 군사력이 강한 군대든, 약한 군대든 다양한 형태의 '위안소'를 운영합니다. 나치 독일도, 독일과 맞서 싸운 연합군도 '위안소'를 상시적으로 운영하거나, 점령지의 여성을 강간하거나, 어쨌든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했습니다. 군사력이 약해서 '위안부'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 군사력을 국가 통제하지 않거나 통제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9. 피고인은 일본군이 성 노예를 삼기 위해 피고인의 지인 여성들을 데려갈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요

우선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평화운동을 열심히 할 겁니다. (검사님도 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주세요) 그런데도 우리 힘이 부족해 전쟁을 막지 못했고, 어느 나라든지 간에 군대가 쳐들어와서 지인을 강제로 끌고 가려 한다면 제 목숨을 걸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할 겁니다. 


10. 군대는 누군가를 침략하기 위해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그 침략으로부터 나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침략과 방어는 같은 말입니다. 조지 부시는 미국민을 방어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략했습니다.


11. 피고인이 주장하는 평화 방법으로 제2의 위안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발생하겠죠. 병역거부만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이 병역거부를 하는 사회라면 '위안부' 문제의 정도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12. 피고인이 언급한 군형법상 동성 간 성행위 처벌조항, 군납비리, 남성 중심적인 문화 등은 시정, 개선이 가능한 것 아닌가요

개선 가능합니다. 그런데 왜 개선이 안 될까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검사님도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데 관심 가지고 행동해주세요. (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주세요)


13. 고민 결과 군사력 유지 없이 세계의 평화를 실현할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모두 병역거부를 하면 군사력 없이 세계가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짜는 중인데 자료가 부족합니다. 국방부가 안보상 기밀이라며 모든 정보를 비민주적으로 통제합니다. 검사님께서도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국가 안보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통제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행동해주세요.(전쟁 없는 세상 후원해주세요)



번외 Q1- 칼을 든 강도가 집에 침입해서 여동생을 강간하려고 하는데, 당신 옆에 총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A1 한국은 총기 소지가 허용된 국가가 아닙니다.


A2 검사님은 강도 막자고 집에다 사드 배치할 건가요? 어벤져스 고용할 건가요?


A3 강간범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강간문화가 만연한 사회를 만든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동안 온갖 강간범들에게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온 법원에 먼저 묻겠습니다. 검사님은 안 그러셨죠? 병역거부자한테 1년 6개월 구형하면서 강간범은 초범이라고 반성한다고 벌금 고작 몇 백 구형한 거 아니죠?


A4 그런데 그 강도가 알고 봤더니 30년 전에 잃어버린 또 다른 동생입니다. 검사님은 그럼 강도, 아니 동생, 아니 강도를 총으로 쏘시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고요? 무지개 반사.



번외 Q2-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 총을 들고 계엄군과 싸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이 쓴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답하겠습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소년이 온다』 117쪽





사실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이렇게 수준 낮고 자격이 의심되는 검사들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게 둘 것이 아니라, 재판 중인 병역거부자들을 심사위원회에서 심사하게 하면 된다. 심사위원들이 검사들보다 이 문제에 더 전문가들이다. 게다가 심사위원의 구성이 다양해 심사 과정에서 여러 토론이 이어지기 때문에 검사 한 명이 재판을 말아먹는 것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심사 통과하지 못하면 그때 가서 감옥에 보내든, 군대에 보내든(당사자가 간다고 하면) 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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