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고, 힘을 최대한 빼세요! 가라앉는다는 기분으로 천천히, 천천히!”
코로나로 어언 8개월가량 중단됐던 수영 강습이 다시 시작했다. 8개월을 쉬었으니 내 수영 실력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폼은 괴팍하게 변해버렸고, 심폐지구력도 떨어져 조금만 수영을 해도 숨이 차올랐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우리에게 강사는 딱 두 가지를 요구했다. 힘을 빼고, 천천히 수영하라는 것.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힘쓰지 마라니 '옳다구나 잘 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웬걸, 천천히 수영하는 게 더 어렵다!
빨리 헤엄칠 때는 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는데, 천천히 헤엄치다 보니 내 폼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호흡할 때 고개를 너무 위로 들고, 그 때문에 다리는 가라앉는다. 팔 동작도 어깨가 너무 밖으로 벌어지는데 손은 또 가운데로 모였다. 아마 비디오로 찍어서 보면 가관이겠구나 싶었다. 문득 기타 배울 때가 떠올랐다. F코드 같은 하이코드는 어느 정도 빠르게 치면 대충 소리가 나는 거 같지만 천천히 치면 어느 손가락이 코드를 잘못 잡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힘을 빼는 것도 쉽지 않았다. 힘으로 윽박지르면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는데 힘을 빼니 리듬을 못 찾으면 정말로 몸이 가라앉았다. 팔에서 몸통을 거쳐 다리로 이어지는 리듬감을 찾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듬감은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에서 저절로 나오는 법이다. 저절로 나오기 위해서는 기본기를 무수하게 반복해서 몸이 기억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초가 탄탄하지 못하니 내 몸에 각인된 리듬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야구 중계를 보면 해설자들은 하나 같이 힘을 빼고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투수들이 공을 던질 때도, 타자들이 방망이를 돌릴 때도 공과 방망이에 힘을 싣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힘을 제대로 싣기 위해서는 오히려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공을 던지는 행동도, 방망이를 휘두르는 행동도 크게 보면 원운동이다. 공을 놓고 나서도, 공을 치고 나서도 원운동이 매끄럽게 이어져야 내가 가진 힘을 온전히 투구와 타격에 전달할 수 있는데, 힘을 주게 되면 근육이 경직되어 '팔로우 스루'라고 하는 나머지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만큼 힘은 다른 방향으로 새어 나간다는 것이다.
야구 해설자들과 비슷한 지적을 만화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드래곤볼>에서 완전체 셀과 싸울 때 트랭크스는 온몸의 근육을 잔뜩 키워 파워를 높인다. 하지만 셀에겐 역부족이었는데, 손오공은 트랭크스에게 그런 식으로는 스피드도 떨어지고 몸에 무리가 가 파워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손오공은 트랭크스와는 반대로 힘을 빼는 방식, 초사이어인 상태를 편안하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훈련을 한다.
천천히 하고, 힘을 빼야 하는 게 꼭 수영이나 야구, 격투기처럼 몸을 써서 하는 일에만 해당할까. 세상 모든 일이 제대로 하기 위해선 천천히,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 오죽하면 <힘 빼기 기술>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을까. 내가 하는 일(평화운동)에도 천천히, 힘을 빼고 일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성명서라든지 논평을 쓸 때 힘이 너무 들어가면 혼자만 비장해졌다. 내가 먼저 분노해버리면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메시지보다는 감정만 기억하게 되더라. 그리고 그 감정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니니 금방 잊게 된다. 정부의 큰 잘못을 비판할 때조차도 힘을 빼고, 천천히 글을 음미하면서 논평이나 성명서를 써내려 갈 때 좋은 글이 나왔고, 그런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가 닿았다.
천천히 해야 내가 가진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할 수 있다. 힘을 빼야 내 몸에 각인된 리듬을 이용할 수 있고 그래야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기초와 기본이 탄탄히 갖춰져 있어야 하고, 기초와 기본은 지겹도록 반복적인 연습과 훈련 밖에는 답이 없다. 알면서도 어렵다. 그 지겨운 순간을 참아내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별 수 없다. 힘을 빼고 천천히 해보면, 안다. 내게 부족한 기초가 무엇인지. 부족한 기초를 다지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수영도, 평화운동도,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