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Jan 17. 2021

동생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 아빠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아빠는 박노자를 읽기 시작했다, 후기

병역거부에 대한 책을 쓰는 중이다. 내가 병역거부를 고민할 당시에 대해 쓰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는 일기를 쓸 때인데 꺼내서 읽어보니 맨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너무 띄엄띄엄 썼고, 그나마도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은 일기장에 안 썼다.


그래서 엄마, 아빠,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일요일 아침부터.

사실을 확인해보니 내 기억이 아주 많이 미화되어 왜곡되어 있더라.


부모님이 나에게 군대 가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 모두 군대 안 가고 감옥 다녀오면 사회생활이 힘드니 군대 다녀와서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한다. 물론 한두어 번 점잖게 말씀하시고선, 내가 고집부리니 더는 말씀을 안 하셨다고 한다. 당시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부모님과 비교하자면 말씀을 안 하신 거나 다름없는 정도여서 내가 잘못 기억했던 것이다.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대학 시절 총학생회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는데, 선거 운동 기간에 내 생일이 있었다. 부모님이 선거운동원들과 먹으라고 내 생일 떡을 보내주셨는데 떡집이 아빠 친구분 가게였다. 그동안 나는 아빠 친구가 떡 배달 와서 선거운동 팸플릿을 보고 내가 병역거부 할 거라는 사실을 아빠에게 말해서 우리 부모님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분은 아빠에게 병역거부의 병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병역거부 활동을 한다는 건 두 분 모두 진즉 알고 계셨고, 실제로 병역거부를 할 거라는 걸 언제 알게 되었는지는 두 분의 기억도 다르다.


그리고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대학 다닐 때 엄마는 일하러 나가느라 반찬을 준비해두고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서셨고, 나랑 동생이 일어나서 아침밥 우리끼리 차려먹고 학교에 갔다고 한다. 엄마는 내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나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아침 일찍 출근하시고, 나는 밤에 맨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는 데모 나간다고 집 밖으로 돌아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고 하신다. 나는 어떻게 살았길래 그런 기억이 하나도 없나. 동생은 내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질 않고, 오히려 내가 학생운동 하던 게 기억이 난다고 한다. 하루는 동생이 집에 혼자 있는데 밤에 경찰이 와서 나를 찾은 적도 있었다 한다. 아마 동생이 내게 말했을 텐데 나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아니 가장 반성하게 되는 건 내가 이제야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가족들에게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왜 엄마, 아빠, 동생에게 내가 병역거부를 할 때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묻지 않았을까? 병역거부가 나에게는 회피하고 싶은 아픈 기억도 아닌데 말이다. 내 학생운동, 내 병역거부 때문에 가족들이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경찰이 찾아온 날 동생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감옥 갔을 때 엄마 아빠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런 생각을 이제야 진지하게 해 본다.


가족이 족쇄가 되는 이들도 있지만, 솔직히 우리 부모님이나 동생은 내 활동을 아주 드러내 놓고 지지하지는 않지만 반대하거나 못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냥 묵묵히 지켜봐 주는데 그 안정감이 내가 평화운동을 맘 놓고 할 수 있는 버팀목일 것이다. 내가 받는 애정, 내가 딛고 서 있는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효자, 좋은 오빠는 못되더라도 나에 향한 애정에 책임감 있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쑥스럽고 낯 간지럽지만, 앞으로 자주 예전 이야기들을 엄마, 아빠, 동생과 나눠야겠다. 나 좋자고 살아온 삶이 가족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