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박노자를 읽기 시작했다, 후기
병역거부에 대한 책을 쓰는 중이다. 내가 병역거부를 고민할 당시에 대해 쓰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는 일기를 쓸 때인데 꺼내서 읽어보니 맨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너무 띄엄띄엄 썼고, 그나마도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은 일기장에 안 썼다.
그래서 엄마, 아빠,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일요일 아침부터.
사실을 확인해보니 내 기억이 아주 많이 미화되어 왜곡되어 있더라.
부모님이 나에게 군대 가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 모두 군대 안 가고 감옥 다녀오면 사회생활이 힘드니 군대 다녀와서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한다. 물론 한두어 번 점잖게 말씀하시고선, 내가 고집부리니 더는 말씀을 안 하셨다고 한다. 당시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부모님과 비교하자면 말씀을 안 하신 거나 다름없는 정도여서 내가 잘못 기억했던 것이다.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대학 시절 총학생회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는데, 선거 운동 기간에 내 생일이 있었다. 부모님이 선거운동원들과 먹으라고 내 생일 떡을 보내주셨는데 떡집이 아빠 친구분 가게였다. 그동안 나는 아빠 친구가 떡 배달 와서 선거운동 팸플릿을 보고 내가 병역거부 할 거라는 사실을 아빠에게 말해서 우리 부모님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분은 아빠에게 병역거부의 병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병역거부 활동을 한다는 건 두 분 모두 진즉 알고 계셨고, 실제로 병역거부를 할 거라는 걸 언제 알게 되었는지는 두 분의 기억도 다르다.
그리고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대학 다닐 때 엄마는 일하러 나가느라 반찬을 준비해두고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서셨고, 나랑 동생이 일어나서 아침밥 우리끼리 차려먹고 학교에 갔다고 한다. 엄마는 내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나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아침 일찍 출근하시고, 나는 밤에 맨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는 데모 나간다고 집 밖으로 돌아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고 하신다. 나는 어떻게 살았길래 그런 기억이 하나도 없나. 동생은 내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질 않고, 오히려 내가 학생운동 하던 게 기억이 난다고 한다. 하루는 동생이 집에 혼자 있는데 밤에 경찰이 와서 나를 찾은 적도 있었다 한다. 아마 동생이 내게 말했을 텐데 나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아니 가장 반성하게 되는 건 내가 이제야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가족들에게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왜 엄마, 아빠, 동생에게 내가 병역거부를 할 때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묻지 않았을까? 병역거부가 나에게는 회피하고 싶은 아픈 기억도 아닌데 말이다. 내 학생운동, 내 병역거부 때문에 가족들이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경찰이 찾아온 날 동생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감옥 갔을 때 엄마 아빠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런 생각을 이제야 진지하게 해 본다.
가족이 족쇄가 되는 이들도 있지만, 솔직히 우리 부모님이나 동생은 내 활동을 아주 드러내 놓고 지지하지는 않지만 반대하거나 못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냥 묵묵히 지켜봐 주는데 그 안정감이 내가 평화운동을 맘 놓고 할 수 있는 버팀목일 것이다. 내가 받는 애정, 내가 딛고 서 있는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효자, 좋은 오빠는 못되더라도 나에 향한 애정에 책임감 있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쑥스럽고 낯 간지럽지만, 앞으로 자주 예전 이야기들을 엄마, 아빠, 동생과 나눠야겠다. 나 좋자고 살아온 삶이 가족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