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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an 28. 2021

치과에서 사라진 두 달치 월급

나는 주로 비현실적인 꿈을 꾼다. 판타지나 SF를 보는 날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온갖 모험을 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체 게바라 평전 읽고 나서는 내가 게릴라가 되어 국정원에 쫓기며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헤엄쳐 도망치는 꿈도 꿨다. 기억에 남는 악몽도 몇 개 있는데, 가장 무서운 악몽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꿨다. 치과 악몽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치과가 너무 무섭고 싫다. 치과 특유의 냄새도 싫고,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치료기구도 싫고, 그것이 치아에 닿을 때의 감촉도 너무나 싫다. 신경치료를 하거나 충치치료를 하는 동안 침을 삼킬 수 없는 것도 싫고, 마취도 치과 마취가 난 제일 아프다. 독립하고 나서는 치과 한 번 다녀오면 치료비 폭탄이 나오는 것도 안 그래도 싫은 치과를 더 싫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싫으면 안 가게 치아와 잇몸 관리를 잘하면 될 텐데, 또 그건 내 뜻대로 안 된다. 30대가 되고 나서야 치과 가는 일이 드물었지 20대까지는 허구언 날 치과에 가서 충치 치료하고, 신경 치료하고, 금니 씌우고 그랬다. 병역거부하고 감옥 가기 전에 엄마의 사촌이 하는 치과에서 치료를 전체적으로 받고 출소한 뒤 다시 가니 수감생활 동안 부실한 영양 섭취 때문에 치아와 잇몸이 상해 또 치료를 받았다. 


초등학교 1학 때 꿈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직까지 구체적인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가 자기 아빠의 치과 의자에 앉아있을 때의 표정으로 치과 진료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무도 나를 붙잡고 있지 않았지만 마치 공포영화의 피해자가 묶여있는 침대처럼 끈 같은 것이 나를 의자에 묶어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30대 정도 된 것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 의사가 나에게 다가왔다. 손에는 내 치아에 구멍을 뚫으려는 듯 물을 뿜으며 돌고 있는 드릴이 있었고 소리가 유난히도 컸다. 겁을 잔뜩 먹은 채 눈을 꽉 감았는데, 갑자기 병원이 소란스러워졌다. 술 취한 남자와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문쪽을 바라보니, 과연 오래 입어 너덜너덜 해진 옷을 입은 남자가 한 손에 소주병을 들고 한쪽 다리를 끌면서 병원에 들어오려고 하고 간호사들을 그 남자를 막으려고 안간힘이었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윌리 웡카 어렸을 적의 한 장면. 치과 의자에 앉아있는 내 마음도 저렇다. 


의사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앙 다문 모습에서 화가 많이 난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결국 간호사들을 뿌리치고 다리를 절둑거리며, 한 손에 든 소주병을 홀짝 거리며 의사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의사의 인상은 더욱 심하게 일그러졌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딱 하나만 기억난다. 두 사람은 형제였다. 의사가 동생, 술병을 든 남자가 형. 의사는 간호사들에게 남자를 끌어내라고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쳤고, 간호사들은 달려들어 남자의 한쪽 팔을 잡아당겼다. 남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을 의사 쪽으로 당겼고 간호사들은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남자의 한쪽 팔을 있는 힘껏 당겼다. 팽팽한 힘의 긴장이 지속되다가, 꺄악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간호사들이 뒤로 넘어졌다. 남자의 몸도 의사 쪽으로 넘어졌다. 간호사의 손에는 남자의 한쪽 팔이 들려있었고, 남자는 팔꿈치 아래가 사라진 자신의 왼팔을 보면서 술이 확 깬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치과 의자에 앉아서 꼼짝도 못 한 나는 그 광경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간호사들의 손에 들린 팔과, 남자의 떨어져 나간 왼팔의 단면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그 기분 나쁜 느낌과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당시 치과 가는 게 너무나 무서워서 그런 꿈을 꾼 게 아닌가 싶다. 


문득 이 꿈이 떠오른 건, 오늘 아침에 치과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잇몸치료는 아팠는데, 그 이후 치료 계획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치아 뿌리 쪽 잇몸이 손실되어 때워야 하는 것이 4개, 오래된 금니에 금이가고 구멍이 뚫려서 신경치료도 다시 하고 금니도 다시 띄워야 하는 게 2개, 오른쪽 아래 어금니 하나는 뼈가 다 녹아버려서 최대한 빨리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치료비를 합해보니.... 내 두 달치 급여다. 우선 임플란트는 나중에 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올해 내기로 한 책이 두 권인데, 그 두 권의 인세가 모두 사라진 셈이다. 치과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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