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찍 잤더니 귀신같이 오늘 새벽에 깼다. 수영이나 하고 오자 싶어 수영장에 갔는데, 아뿔싸 주말에는 새벽에 열지 않나 보다. 확인을 안 하고 간 내 잘못이다. 요즘 일찍 자니 확실히 일찍 깬다. 사실 나는 원래 12시 전에 자고 6시에 일어나는 게 가장 좋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동틀무렵이 더 잘 된다. 밤 12시에 시작하는 박준 시인의 라디오가 아니었다면 이 패턴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침형 인간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출근하기 전 새벽에 영어학원 가기도 좋고(물론 나는 파주로 이사 온 뒤에는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영어학원 새벽반은 못 간다ㅠㅠ) 무엇보다 아침형 인간은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듣는다. 실제로는 그렇게 부지런하고 성실하진 않더라도. 나는 그 덕에 총학생회장 후보도 해봤다. 내가 문과대였고, 남성인 것도 후보가 된 이유였겠지만 교문 앞 선전전이 있을 때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취하는 친구들 깨우는 것이 내 몫이었는데 성실함도 분명 플러스 점수였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밤에 무얼 못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12시만 되면 술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친구랑 단둘이 술 마시다가도 졸고, 선배와 격한 논쟁을 벌이다가도 갑자기 잠에 빠져들었다. 밤새워 시험공부해본 적도 없고, 입시 때도 새벽까지 공부한 적은 없다. 울 엄마가 보기에 시험 범위 공부 하나도 안 했다면서, 밀린 숙제가 한가득이라고 걱정하면서 자는 내가 답답했겠지만 엄마는 나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된 것은 엄마 때문, 아니 덕분이니까.
엄마는 스물다섯 살에 시집을 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일 년 만에 내가 태어났고 동생이 태어났다. 동생과 나는 2살 차이지만 내가 늦은 생일이고 동생은 빠른 생일이어서 연년생이나 다름없다. 이제 걸음마 하기 시작한 아기와, 기지도 못하는 아기를 돌보며 시부모를 모시고 집안일을 했다.
당시 우리 집은 부엌은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이네 부엌이랑 비슷했다. 벽과 천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실내긴 한데, 바닥은 시멘트였고 난방이 되지 않았다. 우리 집도 쌍문동이었는데 골목 풍경도 응팔과 비슷했다. 할머니가 나를 봐주는 동안 그 부엌에서 엄마는 동생을 등에 업고 포대기로 감싼 채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설거지를 했다. 당시 우리 집에는 고시원이나 원룸에 있을 법한 허리께 오는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한다. 그러다 보니 음식이나 재료를 충분히 보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날마다 장을 보고, 날마다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나와 동생이 조금 자란 뒤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나, 동생 모두 6명의 아침저녁과 아빠를 뺀 다섯 명의 점심 밥상을 차려야 했다. 세상에 하루 17인분의 반찬을 날마다 해댄 것이다. 냉장고가 작으니 김치도 보관할 수 없어서 3~4일마다 겉절이를 담그셨다 한다. 다행히 세탁기는 있었지만 용량이 워낙 적었고 탈수 기능도 없어서 손빨래도 많이 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냐고 물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는 못살겠지만 당시에는 다 그렇게 살았다 하신다. 그때는 큰 냉장고 있는 집도 없었고, 집집마다 전화기 없는 집도 많았다고. 그래도 부엌이나 화장실의 구조나 동선이 조금만 더 좋았으면 훨씬 편했을 거라고 하신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십 대 후반의 엄마는 취미는커녕 휴식을 위한 자기 시간도 없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택한 것이 나와 동생을 일찍 재우는 거였다. 나랑 동생이 잠들고 나면 그 시간에 뜨개질도 할 수 있고 쉴 수도 있으니까. 성격이나 기질 탓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나와 동생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동생은 두 조카가 밤에 잠을 안 잔다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애들 일찍 재우는 비법을 묻곤 한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 9시에 잠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마지막 승부'나 '파일럿' 같은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못 보고 주말에 재방송을 보거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어 스토리를 따라갔다. '모래시계'는 광주에 SBS가 안 나와서 못 봤다.
내 의지로 된 것은 아니지만, 아침형 인간은 사회생활하기 편하다. 파주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내가 올빼미형 인간이었다면 출근길이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영어 학원 새벽반은 못 다니지만 동네에 있는 새벽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출근할 때의 상쾌함이란. 이게 다 엄마 덕분이다. 마냥 감사만 하기에는 엄마가 나와 동생을 아침형 인간으로 키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눈에 밟힌다. 지금 나보다 열 살도 더 어렸을 당시 엄마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 말고 뭘 하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