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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an 17. 2021

아빠는 박노자를 읽기 시작했다

 

병역거부자들이 인터뷰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두 가지다. 병역거부를 결심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는지, 병역거부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진 않았는지 특히 부모님과 갈등은 어땠는지를 꼭 묻는다. 나는 이 질문들이 마뜩지 않다.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난 사람, 그로 인해 주변인들과 갈등에 놓여 있는 측은한 사람이라는 이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품고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심성의껏 대답한다. 편견을 깨려면 편견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인터뷰를 보고 한 사람이라도 설득할 수 있기를 바라며.     


첫 번째 질문은 대체로 병역거부자들이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은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군 복무 중에 받은 명령을 거부하거나 특정한 전쟁을 인정할 수 없어서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은 그나마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다. 혹은 여호와의증인 병역거부자들은 신앙으로 설명하면 되니 그이들에게는 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 밖의 병역거부자들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고민 속에서 병역거부를 결심하고, 흔들리고, 그런 과정을 지나고 보면 어느새 병역거부자가 되어 있는 것에 가깝다. 양심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 하는 일에 끼치는 영향, 출소 이후 삶에 대한 걱정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마치 단풍잎이 서서히 물드는 것과 비슷하다. 단풍잎은 서서히 조금씩 물들어 가지만 우리는 어느 날 아침 단풍잎이 붉게 변해있는 것을 보고선 순식간에 물이 들었다고 느끼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거부를 한 특별한 계기나 이유를 말하라는 것은 대하소설 토지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병역거부자들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더라도 이 문제는 병역거부자들이 병역거부를 고민할 때 가장 어려운 문제이며, 때로는 병역거부자들이 자신의 양심보다 더 큰 비중을 두고 고민하는 문제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병역거부자들에게는 부모와의 갈등은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병역거부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해가 높지 않았다. 찬성하고 반대하고를 떠나 병역거부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어본 분이 많았다. 듣도 보고 못한 병역거부라는 걸 자식이 한다는데, 남들 다 가는 군대를 안 가겠다는데, 대신 감옥에 제 발로 걸어가서 평생을 전과자로 살겠다는 데 그걸 쉽게 받아들일 부모는 없었다. 드물게 병역거부 운동을 지지하는 부모님도 있었지만, 그런 분들조차도 자기 자식이 감옥 가는 것을 달가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큐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오태양이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웃는 얼굴로 말하며 재판정 문을 열고 들어간 뒤에 “내가 저걸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오열하는 오태양의 어머니가 나온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착실한 아들이 군 생활도 잘하고 있을 거라 철썩 같이 믿었던 강철민의 어머니는 강철민이 농성하고 있던 기독교회관에 찾아오셔서 복도를 뒹굴며 오열하셨다. 자식이 하나만 더 있어도 저 놈은 지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놔둘 텐데 저 놈 하나밖에 없는데 감옥 가는 꼴을 어떻게 보냐고 하소연하던 이길준의 아버지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을 원망하셨다. 나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었는데, 병역거부 때문에 부모님과 갈등하지 않았다. 군대 가는 게 어떻겠냐고 두어 번 말씀하셨지만, 출소한 이후 내가 겪을 상황에 대한 걱정이었지 군대에 꼭 가야 한다고 강요하진 않으셨고, 내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존중해주셨다. 전쟁없는세상을 제대로 된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맨날 자원활동만 한다고 못마땅해하셨지만,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병역거부를 포기했던 많은 이들을 떠올려 본다면 내가 병역거부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병역거부로 부모님과 갈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온전히 내 에너지를 평화운동에 쏟을 수 있었다.      


민가협 목요집회에 참석해 우시는 오태양 씨의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당신 아들의 병역거부를 마음 아파하시면서도 병역거부 운동을 지원해주셨다. 출처:한겨레


병역거부자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도 병역거부자들의 마음만큼이나 복잡했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자식 걱정이었다.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가지 않아서 겪을 차별, 나쁜 놈들이 득시글거린다는 감옥에서의 생활, 출소하고 나도 평생 호적에 빨간줄을 지닌 채 전과자로 살아야 하는 일에 대한 걱정이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차출될 정도로 다 큰 어른이니 병역거부자들의 인생은 스스로가 알아서 걱정하고 책임져야 하는데, 부모들에게는 품 안의 자식인지 다 큰 어른의 인생에 개입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걱정들을 모두 가족주의나 가부장제로 설명할 수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겪거나 힘든 일을 겪을 때 함께 아파하고 그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는 마음은 가부장제나 가족주의 바깥에도 존재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병역거부자들도 때로는 과하게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려는 부모님과 갈등하면서도 부모님의 걱정하는 마음을 아예 외면할 수는 없었다.      


피할 수도 없는데 즐길 수는 더더욱 없는 부모님과의 갈등을 병역거부자들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했다.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짧게 겪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입영 날 병역거부를 하고 난 뒤에야 부모님께 알렸다. 고통은 짧지만 그만큼 더 충격적으로 강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다른 방법은 정반대다. 병역거부를 하기 전에 부모님께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결과는 부모님을 설득하거나, 부모님이나 병역거부자 중 한쪽이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부모님의 설득하는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회(꼭 국가인권위가 아니더라도 국가 기관 마크가 찍힌) 서류봉투를 구해서 병역거부에 대한 자료를 넣어서 드린다든지, 부모님 보시기에 좀 그럴싸한 기관에서 주최하는 병역거부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서 인증샷을 찍어서 보낸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기득권의 권력이나 권위를 이용 방식이었으니 정치적으로 올바르진 않지만, 당시 병역거부자들은 그렇게라도 부모님과 갈등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내 경우엔 자연스럽게 두 번째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내가 택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알게 되었다. 부모님께 살갑게 내 고민을 털어놓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얼 숨기고 그러지도 않았다. 내가 학생운동으로 하며 병역거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부모님은 알고 계셨다.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직접 밝힌 것은 졸업한 뒤였지만, 부모님은 이미 병역거부 활동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으셨다. 놀라진 않았더라도, 갑작스러운 통보에 충격받지 않았더라도 아픈 건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로 고민하는 병역거부자들에게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부모 자식 사이 갈등은 남들이 해결해 줄 수 없어요. 본인들만이 해결 방법을 알죠. 다만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병역거부 이후에 부모님과 관계가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거예요.” 실제로 그랬다. 20대 초중반의 남성들이 부모님과 아주 친밀한 대화를 나누거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병역거부자들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대학시절 부모님과 속 싶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병역거부가 부모님과 대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대화를 나누니 관계가 좋아졌다. 


감옥 가기 전까지는 병역거부자와 부모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처음으로 기울인다. 병역거부자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부모님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부모님은 남들 안 하는 짓을 한다는 자식을 이해하기 위해 병역거부에 대해 알아보고 자식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 아빠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병역거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발언해온 지식인 박노자의 책을 찾아 읽었다고 했다. 자식이 감옥 간 뒤에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하게 된다. 부모는 감옥에 갇힌 자식이 안쓰러워서, 자식은 자신의 양심이 지키는 일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목소리로 전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한 글자 한 글자에 담은 마음은 어쩌면 목소리보다 서로에게 더 전달이 잘 되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은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센 사람들이다. 그런 성정이 없으면 병역거부를 선뜻 실천할 수 없을 테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때로는 그런 성정이 강해 주변을 돌보지 않거나, 자기가 희생시키고 있는 관계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게 부모님과의 관계일 것이다. 부모님을 이해하기 위해, 설득시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 부모님의 가슴에 박은 대못의 고통을 짐작하려는 노력을 통해 병역거부자들은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기도 하지만 출소 직후 병역거부자들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타인을 살피고 관계를 돌아보는 감정노동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엄마와 아빠가 면회를 다녀간 뒤 엄마가 나에게 편지를 썼다. 면회를 마치고 나온 아빠가 우셨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안 울었던 양반이 아들이 감옥에 있는 걸 보고는 울었다는 이야기를 썼다. 나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차가운 감옥 벽에 기대어 펑펑 울었다. 다른 사람의 눈물에 깊게 감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은 병역거부가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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