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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Mar 08. 2021

아무도 해치지 않으려는 이의 감옥행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는 일이 크게 슬프지 않다. 좀 기가 막히긴 하다. 세상에 스스로 감옥을 향하는 이의 뒷모습을, 그 걸음을 보고 있는 일은 기가 막힐 수밖에. 하지만 좀처럼 슬프지는 않다.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마음에 굳은살이 박여서다.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하면서 수십 명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는 걸 지켜봤다. 웃으며 들어간 사람도 있고, 울며 들어간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들어가는 이도, 외롭고 쓸쓸하게 들어가는 이도 있었다. 아무튼 수십 명의 감옥행을 지켜보는 일은 마음에 굳은살이 충분히 박일 만한 일이었고, 그 굳은살이 아니었다면 마음이 견뎌나질 못했을 거다.


두 번째 이유는 '아니 너만 감옥 가냐? 나도 갔다 왔다'는 마음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처지와 상황이 다르고, 나는 비교적 상황과 처지가 나은 편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그렇더라. 감옥 가는 거 괘념치 않는 병역거부자들은 괜스레 마음이 쓰이는데 감옥 간다고 티 내는 병역거부자들에게는 '너만 감옥 가냐'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물론 그이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지 않은 것을 미워하지 않는 법. 아마도 내가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 내 모습을 그이들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마지막 이유는, 슬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위험하다. 병역거부자마다 상황과 처지뿐만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는 이유가 다르다. 다만 나는 적어도 평화운동 혹은 저항운동의 일환으로서 병역거부를 인지하고 실천하는 병역거부자들의 병역거부는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 그 스스로 선택한 저항을 우리가 멋대로 수동적인 것으로 재단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시밭길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이에게 우리가 가져야 할 감정은 불쌍함, 연민, 슬픔 이런 것보다는 연대와 지지가 아닐까. 더욱이 병역거부는 시민불복종이고 다시 말해 군대를 거부하여 처벌 받음으로써 징병제의 문제점과 폭력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감옥에 갇힌다고 해서 그의 실천이 딱히 실패했다거나 의미 없다고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그래도 병역거부자가, 그것도 열심히 활동하던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안 그래도 동부구치소에서 재소자들에게 마스크 지급이 안 되어서 한바탕 난리가 일었던 게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기에 감옥에 보내는 것은 신경이 많이 쓰이고 걱정이 많이 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감옥에 간 병역거부자와 달리, 병역거부자들의 가족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힘들다. 내가 감옥 갈 때 우리 엄마가 꼭 저렇게 울었을 거 같고, 내 동생이 차마 울음을 꼭 참았을 것만 같아서. 나야 내 인생이고 내 선택이니 힘든 일도 고통도 기껍지만, 나를 아껴주는 이들은 그게 아니니까.


오늘, 병역거부자 홍정훈이 구속되었다. 대법원 판결까지 끝났으니, 사건을 담당했던 중앙지검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거기서 함께 이송될 수감자들을 기다린 다음에 수갑 차고 포승줄에 묶여서 서울구치소로 갔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애매하게 불이 꺼진(켜지기도 한) 방에 누워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있겠지. 그를 불쌍하다 생각하는 것을 홍정훈 스스로도 바라지 않을 것이고, 나도 그럴 마음도 없다.  부디 건강하게 지내다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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