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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pr 18. 2021

소울

짧은 리뷰

영화 <소울>을 극장에서만 두 번 봤다. <화양연화>처럼 시간이 흘러 재개봉한 영화라면 모를까 한 번 본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보는 일은 나에겐 거의 없는 일이다. 첫 번째는 조카와 함께 봤다. 조카 보여주고 싶어서 꾹 참았다가 설 연휴 때 봤다. 영화의 유머 감각이라든지, 영화가 다루는 주제가 조카들에게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둘째는 십 분도 안 돼서 안 보고 싶다고 그랬지만 아홉 살이 된 첫째는 재밌다고 했다. 무하마드 알리, 마더 테레사를 몰라도, 인생의 목표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어도 재밌었나 보다. 무엇이 재밌었는지를 물었지만 자세히 설명하진 못했다. 나는, 더빙으로 보느라 아쉬워서 한 번 더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동네 극장에서 마지막 상영 날 가까스로 다시 봤다. 


인생의 목표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소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인생의 목표와 삶의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이 장면이지 않을까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활동가들은 대체로 목표지향적인 삶을 사는 경향이 있다. 나는 활동가 치고는 거시적인 목표 같은 걸 세우고 사는 편은 아니다. 물론 사회운동은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서 우리가 달성 가능한 목표를 잘 설정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내 인생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나는 무엇이 되겠다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어떤 걸 해나가야겠다는 목표 같은 건 가져본 적이 없다. 장기적인 목표를 수립해서 유학을 가고, 학위를 따고, 전문직 자격증을 따는 친구들이 신기할 뿐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생각하지만 무엇을 달성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본 적은 없지만 그때그때 순간의 삶에는 늘 목표가 있었고, 목표를 통해 의미를 추구했다. 그게 없는 삶을 견디질 못했고, 없으면 반드시 찾아야 했다. 삼십 대 초반 보리출판사를 다닐 때는 노조를 조직하고, 단협을 맺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조합원들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고, 이후 현실문화연구 출판사를 다닐 때는 사회운동 관련 책을 기획해서 내고 잘 팔리게 하는 게 목표였다.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할 때는 2018년 전까지는 두말할 거 없이 대체복무제 도입이라는 당면한 목표가 늘 존재했다. 내 목표는 주로 이런 공적인 업무에서 설정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고, 이런 것들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지만 목표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관계를 목표라고 인식해보지 않았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관계가 목표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영화 <소울>은 목표가 없는 인생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우리 사회는 커다란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달성해나가는 사람들을 추켜세우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묻는 것만 봐도, 얼마나 우리가 목표지향적인 삶이 마치 보편적인 표본인 것처럼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은 꼭 무언가 되려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확실히 세상은 그런 대단한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 덕에 진보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상대성원리를 발견한다든지, 우주를 탐사한다든지, 100미터를 10초 안에 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특별한 목표 없이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대단한 목표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굴러간다. 새로운 발견이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굴러가지만 특별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이 없다면 세상은 굴러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소울>의 메시지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커다란 목표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목표가 없는 건 괜찮은 걸까?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할 깜냥은 안 되고, 내 삶을 살펴본다. 나는 과연 그때그때의 목표가 없는 삶을 견딜 수 있을까? 목표를 위해 맹렬히 돌진한다거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삶을 살진 않았지만 목표 자체가 없는 삶은 더더욱 경험해보지 못했다. 인생의 목표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 나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내 목표들은 달성하거나 실패했다. 물론 목표가 없어도 나는 일을 해내고 있다. 해왔던 일을 익숙하게 처리해내는 건 어렵진 않다. 하지만 그런 일은 꼭 필요한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내겐 아무런 재미가 없다. 나는 목표가 있어야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내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는 버겁다. 새로운 목표를 무엇으로 세워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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