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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n 13. 2021

굴뚝을 기다리며

짧은 리뷰

예전에 하동기네 극단에서 하는 연극 <헨젤과 그레텔>을 보고 와서, 공짜로 연극 보여준 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리뷰를 썼는데, 그래서인지 극단 고래에서 브런치를 통해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 시사회 초대장을 보내주셨다. 요즘 정신이 없기도 해서 따로 연극에 대해 찾아보지 않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대학로에 갔다. '굴뚝'이라는 단어와 연극 포스터에 이미지(이윤엽 판화가의 작품)로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고공농성 이야기겠거니, 그 정도만 예상을 해보았다.



소극장에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무대는 굴뚝 위에 마련된 고공농성장이었다. 몇 개의 화분과 비닐로 감싼 조그만 공간, 물이 든 생수통을 보면 알 수 있다. 무대는 굴뚝(원통형)의 1/4이 되는 공간이었고, 객석은 두 방향에서 무대를 바라보는데 객석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무대 위에서 직각을 이루며 만나는 구조였다.


연극은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이 되는 축은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누누와 나나의 이야기다. 연극은 기나긴 고공농성 가운데 며칠을 보여주는데, 하루하루는 지루하게 반복된다. 누누와 나나는 같은 동작과 대사를 날마다 반복하며 서로 티격태격한다. 이 반복은 마치 고공농성이라는 굉장히 정치적인 행동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왜 아니겠는가. 그 높은 하늘 위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공농성은 실은 악덕 사장과 싸우는 게 아니라 지루함과 외로움과 고립감과 반복적으로 싸우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편으로는 나나와 누누가 굴뚝에 올라가기 전에 수행했던 노동의 형태를 상징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수행하는 반복적인 동작들. 이는 이 연극의 두 번째 축하고도 이어진다. 특이한 것은 누누와 나나가,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왜 굴뚝에 올라갔는지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인공이 투쟁하는 노동자일 뿐 노동 이슈를 다룬 연극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다룬 연극처럼 느껴진다. 속절없는 고립감. 불안한 기다림, 지루한 반복을 우리는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는 묻는 것만 같다.


누누와 나나가 지내는 굴뚝을 손님이 차례로 방문하는데, '청소' '미소' '이소' 방문이 연극의 다른 축을 이룬다. '청소' 굴뚝 청소부, '미소' 굴뚝 청소 AI 로봇, '이소' 라이더다. 이는 각각 과거의 노동과 미래의 노동과 현재의 노동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지만, 실은  모든 노동의 형태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동시에 존재한다. 각기 다른 노동형태에서 빚어지는 사회 문제들이 동시대에 한꺼번에 존재한다. 연극이 끝난  이어진 GV(연극도 GV라고 하나?)에서 이해성 연출은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우리 노동 운동의 한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했는데, 연출자가 고민하는 노동 운동의 한계가 이런 노동형태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아닐까 싶었다. 노동 운동의 '한계'라고 언급했지만 외부자의 시선으로 손쉽게 비판하는 느낌이 아니라, 애정을 갖고 함께 고민하는 태도에 가깝다. 그는  한계에 대해 자기 또한 답이 없고,  연극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모르지만 답을 찾아야 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디 노동 운동만의 문제일까. 아주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평화운동 또한 비슷한 고민에 놓여 있다. 예를 들면 내가 20년 동안 해온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 나는 회의감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와는 효과가 미약하다고 느껴진다. 무슨 이야기냐면, 전쟁을 막기 위한 시민불복종 평화운동으로서 병역거부는 1차세계대전 당시 시작되었다. 당시는 아직 대량살상무기 발달하기 전이라 전쟁에서 군인(보병)이 정말 중요했는데, 전쟁을 중단시키고 싶은 평화활동가들이 택한 방식이 바로 병역거부였다. 군인이 없다면 전쟁을 치를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다. 군인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군인이 전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드론으로 폭격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렇다면 병역거부의 효용 또한 줄어든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아무리 병역거부를 해도 국가는 드론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연극은 이 질문을 노동 운동에서 던졌지만, 아마도 이 연극을 본 많은 이들은 자신의 필드에서 비슷한 고민에 포개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날짜는 까먹었는데, 이후 이어질 공연에서는 고공농성을 하는(혹은 했던) 노동자들이 연극을 보러 오고, 끝나고 난 뒤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다고 한다. 노동운동이 마주한 현실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그날 가서 봐도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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