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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Sep 28. 2021

안녕 커뮤니티

짧은 리뷰

올해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을 꼽으라면 나는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과 함께 이 책을 꼽을 거 같다. 앉은자리에서 한달음에 다 읽었다. 물론 만화니 가능했지만, 2권짜리고 제법 두꺼운 책이어서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 순삭 되었다. 만화 리뷰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뭐라도 기록을 남겨놓지 않으면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는 고사하고 읽었다는 것 자체도 잊고 살게 될 거 같아서 기록을 남긴다. 올해의 책으로 꼽아도 손색 없을 만큼 내겐 충만한 독서였지만, 그 충만함을 글로 표현할 길이 없어서 너무나 안타깝다. 


다드래기 작가의 책은 처음 보는데, 책날개의 작가 소개에 "스케일 작은 만화가"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실제로 <안녕 커뮤니티>는 거대하고 거시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만화 줄거리는 단순하다. 지방 소도시쯤으로 보이는 오래된 동네에 도란도란 모여 사는 이웃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오래되고 가난한 동네다 보니 주민들은 대부분 노인들이고, 가끔씩 자식들 찾아오곤 한다. 


이 책을 추천해준 선배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이고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과연 그러하다. '노인'이라는 정체성은 이 만화의 핵심적인 줄기를 이룬다. 이 마을 노인들이 커뮤티(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계기는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라든지 사회운동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야말로 노인들이 고독사 하지 않기 위해 서로 연락망을 만들어 아침마다 안부를 확인한 것이 계기가 된다. '노인'을 큰 줄기로 삼아 여러 소수자성이 배치된다. 노인들 가운데는 레즈비언 커플도 있고, 더 가난한 노인도 있고, 일명 박카스 아줌마라고 부르는 성매매 여성도 있고, 한국으로 결혼해온 이주 여성들이 며느리인 노인도 있고, 여전히 남자 손주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꼰대 노인도 있고, 체면만 차리는 노인, 권력에 아부하는 노인, 아무튼 별별 인간 군상이 다 나온다. 이주민, 성소수자, 가난한 사람, 성매매 여성 노인 등 각종 소수자성이 등장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것은 이 만화가 특별한 정치적 지향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냥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했던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의 2020년대판 버전 혹은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의 조금 더 가난한 노인들 버전 같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울다가 웃다가, 속상하다가 통쾌하다가, 울컥하다가 다시 배꼽 빠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만화라는 장르의 정수가 뭔지 모르겠지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특별히 정의롭지도 악랄하지도 않은 이들이,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돌보는 이들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 큰 관심 없지만 세상에 덜 피해 끼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자극적인 것 하나 없는데도 어느새 깊게 빨려 들어가게 된다. 아 진짜, 누가 이 만화 드라마로 만들어줬으면. 이런 다채로운 삶의 풍경과 에피소드를 담아내려면 영화보다는 드라마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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