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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Oct 10. 2021

함께 살아가기 위한 수학공부

《공부하는 이유: 수학》을 읽고  


20대 때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것, 어떤 면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반자본주의, 혁명 같은 것들. 그것은 그 자체로 완전하게 아름다운 것이었기 때문에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컨대 어떻게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 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지, 그러한 방법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이상만 높고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들에 대해 흥미를 잃어갔다. 내가 현실주의자가 된 것은 맞지만 도달할 수 없는 목표라서 흥미를 잃은 게 아니라, 도달하기 위한 계획이 없기 때문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하면 뭐하나. 결국 세상을 바꾸려면 바꿀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한 것을. 


《공부하는 이유: 수학》리뷰를 쓰는데 난데없이 반자본주의니 혁명이니 늘어놓는가 싶을 것이다. 반자본주의와 혁명을 이야기하는데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 에세이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많다. 반자본주의와 혁명을 부르짖는 것이 내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 태도가 수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낭만은 나와 내 동료들만의 만족이었을 뿐,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세상을 설명하지 못했고,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지를 고민하지 않았는지도. 옳은 말을 하고 옳은 행동을 하면 역사가 저절로 발전할 것이라 믿었던 걸까?


나는 사회운동은 수학적인 사고방식, 수학적인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운동은 시적이고 문학적이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학적이어야 한다. 수학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우리 주장의 근거를 쌓기 위해 데이터를 조사하고 가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함께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과 전술을 수립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논리적 사고가 바로 수학적인 사고라고 《공부하는 이유: 수학》를 쓴 나동혁은 말한다. 


나동혁의 전작인 《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계가 열린다》가 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 책을 비평한 책이라면 이 책은 좀 더 친숙한 소재들-스포츠, 요리, 전염병, 날씨, 선거, 계절 들에 어떻게 수학이 쓰이고, 더 나아가 수학적 사고가 어떻게 바탕에 깔려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수학이 사회운동에 쓰이는 장면을 서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학적 사고라는 것이 계산기 두드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할 때만 쓰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바탕으로 깔려 있는 것이라면 사회운동에서 수학적 사고가 왜 중요하고,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추론 방식 또한 저자에 따르면 수학적 사고다. 


우리는 흔히 수학은 자연과학의 언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간 세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구성하려는 모든 노력에 수학적 사고가 깔려있는 것이다. 역사학, 사회학, 법학 같은 근대 학문 모두 수학적인 사고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같은 영역에도 수학적 사고는 큰 영향을 끼친다. 가령 우리가 음악에서 화음이라고 하는 것들은 주로 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림에서 구도는 기하학과 뗄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예술에서의 파격이라는 것도 애초의 기준이 되는 예술의 문법이 있을 때 가능하고, 그 예술의 문법이라는 것도 오랜 세월 인류가 귀납적으로 쌓아온 창작활동에 대한 비평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결국 예술의 창의력도 수학적 사고와 무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수학 잘하면 모든 걸 잘한다거나, 수학을 못하면 잘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아니다. (잘하고 못한다는 표현 자체가 얼마나 수학적이지 않은가! 수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이용석의 음악 점수는 100점 만점에 80점이고 나동혁은 70점, 존 레넌은 85점이다." 이렇게 써야 할 것이다. 이용석은 존 레넌이 보기에는 음악을 못하는 사람이지만, 나동혁이 보기에는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에서 보자면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두 장면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소개한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와 '수학은 천재의 학문입니까'에 소개한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 허준이의 인터뷰다. 자폐증을 진단받은 템플 그랜딘은 일반화해서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져 기하학이나 삼각함수처럼 추상화가 필요한 수학은 무척 힘들어했지만, 시각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은 천재적이어서 그를 바탕으로 동물학자로서 뛰어난 연구 실적을 남겼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국제 수학계에서 능력과 업적은 인정받은 수학자 허준이는 인터뷰에서 "현대수학은 소수의 천재가 이끌지 않고 인류가 하나의 '원팀'으로서 활동한다"라고 말했다. 


이 두 사례는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수학을 시험이나 성적, 특히 입시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경험을 쌓아왔지만, 결국 수학은 인간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사람들 사아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바탕인 논리적 사고를 키우는 학문이라는 것. 잘하고 못하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바로 우리가 수학을 배우는 목적이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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