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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Nov 14. 2021

불가해한 이를 사랑하는 법, 사랑하는 이를 이해하는 법

영화  '너에게 가는 길' 리뷰

영화를 보는 내내 김초엽의 소설 《방금 떠나온 세계》를 떠올렸다. 자신의 현재 신체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껴 신체를 절단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는 인물들이나 몸을 개조하는 것에 적극적인 트랜스휴먼들(〈로라〉에 나오는 인물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은유처럼 읽혀서 영화의 등장인물 한결과 겹쳐 보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소설이 던지는 질문과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서로 다른 듯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김초엽 작가는《방금 떠나온 세계》의 일곱 편의 단편을 통해 거듭 질문한다. 


"불가해한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이해와 사랑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지만, 사랑과 이해는 같지 않다.(〈로라〉105쪽) 〈로라〉의 화자 진은 여전히 불가해한 L을 이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쓴다. L은 그런 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진 네가 그 모든 일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난 기쁘고 또 슬퍼져.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사람들은 글을 쓰고 책을 찾아 읽고 또 애써 상상하지만, 너처럼 온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겠지. 나도 그걸 알아.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히 해야 해. 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 그 여행을 다녀온 거야."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L이 진에게 말한 것처럼 어쩌면 이해를 위한 모든 노력은 실은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김초엽 소설 속 인물들은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망가진 현실, 무너진 관계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사랑을 놓을 수 없는 이들이다. 



《방금 떠나온 세계》가 불가해한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소설이라면, '너에게 가는 길'은 사랑하는 이해하는 법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FTM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나비, 게이 아들을 둔 비비안이 자식들의 커밍아웃을 마주하고 퀴어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보여준다. 


성소수자들이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다룬 '3XFTM'이나 게이의 삶을 보여준 '종로의 기적' '위켄즈' 같은 연분홍치마의 전작들의 궤도에 있지만, 나는 이 영화를 관계에 대한 영화로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갈 삶에 대한 걱정, 이전의 세상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세상에서 맺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낯섦, 그 안에서도 끝내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이 다큐 영화의 주인공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과연 사랑이 이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부모라고 다 자식을 사랑하나? 사랑해야만 하나? 이 질문들도 물론 중요한 질문이겠지만, 영화는 이 지점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대신 사랑하는 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다루는 정서는 굉장히 보편적인 정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꼭 부모 자식 간이 아니라도, 혹은 성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신파거나, 식상한 맹탕 영화는 아니다. 사랑하는 이를 이해하기 위한 공간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이고, 성별정정 심사가 진행되는 법정이고, 혐오세력이 난동을 부리는 아스팔트 위 퀴어퍼레이드 현장이다. 퀴어영화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정서는 정치적인 전복이 된다. 


김초엽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모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다. 내 아들, 내 딸이라도 나는 그들이 아니니까. 때로는 이해한다는 오만이 폭력적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이해를 바라는 갈망이 서운함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가족이라는 굴레는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어 갈 때도 있다. 


나는 영화에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했다. 엄마에게 커밍아웃 할 때 한결과 예준의 떨림을, 그 떨림을 마주한 나비와 비비안이 견뎠을 그 무서운 밤들과 더디게만 흘렀을 시간들을 떠올려보려 노력했다. 이렇게 다큐 영화를 찍기까지 거쳐와야 했던 미움과 원망과 미안함과 서운함과 고마움이 뒤섞였을 시간들을 짐작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들은 끝끝내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 때로는 온전히 이해가 안 돼 자식들 앞에서 이해하는 척 연기를 하고, 어색한 상황에서 과장한 행동을 하면서도 이해를 넓혀나가는 데 주저함이 없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참여하고,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혐오세력의 방해로 난장판이 된 것이 속상해 우는 자기 자식 또래의 퀴어들을 안아준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아까워서 못 읽고 있었던 《방금 떠나온 세계》의 마지막 단편을 펼쳤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과 닮았다. 이들은 알까? 이들이 사랑하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품어내는 온기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을. 



*제목 사진은 영화의 스틸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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