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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Nov 30. 2021

흙에서 기름으로, 기름에서 흙으로

전시 <S.O.S>  리뷰


전쟁을 상징하는 단어 하나만 떠올려본다면?


전투기, 미사일, 탱크, 핵무기, 지뢰, 수류탄, 총, 군인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요즘이라면 드론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거고 한국 사람들이라면 분단, 휴전선, 이산가족 같은 단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기름은 어떨까? 위의 단어들이 전쟁 외적인 영역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것에 비해 기름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전쟁이라고 했을 때 기름을 먼저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과 각 단어의 연관성만 따져본다면 어쩌면 기름은 저 위에 나열한 단어들보다도 더 앞자리에 위치할지도 모른다.


현대의 전쟁은 기름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기름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예를 들자면 나치 독일이 순식간에 유럽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게 해 준 그 유명한 전술 '전격전'의 필수 원료는 고무와 석유였다(《자본은 전쟁을 원한다》262쪽). 기름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품인 동시에 전쟁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략할 때 이라크의 민주주의보다는 석유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전쟁 무기를 생산하고 사용하는데, 전쟁 물자와 군인을 수송하는데, 평시 군사 훈련을 하는데 모두 기름은 필수 자원이고 군대는 막대한 기름을 전쟁을 준비하고 치르는데 쓰고 있다. 환경활동가나 평화활동가들에게는 군사 기지의 오염된 땅을 두고 "우리나라에도 유전이 있어"라는 농담이 익숙할 정도로 군대는 전쟁을 치르지 않는 순간에도 막대한 기름을 쓰고 있는 것이다.


피스모모가 기획한 전시 S.O.S (Soil to Oil, Oil to Soil 흙에서 기름으로, 기름에서 흙으로)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탁월한 전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전쟁에서 기름이 차지하는 비중을 염두에 두고 지은 제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제목만으로도 전쟁의 본질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S.O.S는 1952년 한국전쟁 중에 건설되었다가 2007년 한국 정부에 반환된 춘천의 미군기지 캠프페이지에 주목한다. 전국의 많고 많은 미군기지 중에 왜 하필 춘천의 캠프페이지에 주목했는지 물었을 때 피스모모 한광희 사무국장은 두 가지의 이유를 들었다. 미군기지에 대한 전시라고 했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성을 피하기 위해 동두천이나 의전부 같은 아주 익숙한 지역을 피했고, 기지 반환 이후 오염 정화 사업에서 춘천 시민사회의 대응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 캠프페이지를 선정했다고 했다.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진과 텍스트 그리고 인포그래픽과 설치물인데, 나는 그중에서도 사진과 텍스트가 이 전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시장 벽면에 붙은 사진은 피스모모 활동가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춘천을 오가며 찍은 캠프페이지의 현재 모습과 인터넷에서 찾아낸 과거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옛 캠프페이지의 모습과 폐유에 절어있는 전봇대로 추정되는 나무 기둥과 흙 등 오염된 현재를 대비시킨다.


사진이 군사기지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라면, 텍스트는 군사기지와 사람들의 일상을 잇는 가교다. 캠프페이지에 복무한 미군의 기억, 춘천시민들의 기억을 담은 스트는 군사기지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군사주의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작동하여 일상을 전쟁으로 이끌어가는 강한 중력을 가진다. 세계적인 군사주의 연구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신시아 인로와 베티 리어든의 텍스트는 특히 군사주의가 어떻게 가부장제와 공모하여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일상에 침투해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나치의 공항이었다가 공원으로 복원한 템펠호프 공원 사진과 공유지와 커먼즈에 대한 텍스트는 전시가 던진 질문에 대한 피스모모의 대답처럼 보인다. 대답은 아주 구체적인 형태는 아니다. 이런 전시에서 구체적인 캠페인을 제안했다면 오히려 전시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 대신 대답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캠프페이지로 상징되는 군사기지라는 현실에서 피스모모의 메시지인 "평화는 모두의 것"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전시를 통해 상상해보는 것도 좋은 관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사진 중 일부는 피스모모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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