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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Dec 04. 2021

액트리스 다이어리 ACT:LESS DIARY

짧은 리뷰


극단 백수광부 하동기 연출은 데뷔작인 〈럭키슈퍼〉부터 비교적 최근작인 〈헨젤과 그레텔〉까지, 당대 한국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결혼 후 경력 단절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액트리스 다이어리〉 또한 기대가 되었다.



두 명의 배우가 이 연극의 제목과 시작을 설명하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김경희 이민애 두 배우는 실제로 극단에서 프로 배우로 연극 공연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자연스럽게 불러주는 연출자가 없어서 연극 무대에 오르지 못하다가, 10년 뒤 다시 프로 연극 무대에 배우로 서게 된 이들이다. 연극의 대표 작가인 윤소정 작가 또한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다시 프로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동기 연출은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선배들을 만나고 난 뒤 이 연극을 기획했다고 한다. 이민애 김겸희 배우에게 이러한 연극을 올릴 테니 일기를 써달라고,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일상을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로 연극은 시작된다. 제목에서 '액트리스'는 여배우를 뜻하는 Actress가 아니다. 연기Act가 없는less 배우라는 뜻으로, '결혼 후 연기 경력이 단절된 배우들의 일기'라는 뜻이라고 두 배우는 설명한다.


사실 여성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의 디테일은 새로울 건 없다. 여성들이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는 것은 큰 사회문제지만 아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나마 좀 다른 점이라면, 연극계 이야기라는 것.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이 든 여성의 배역이 주인공의 엄마, 이모, 옆집 아줌마, 할머니 같은 한정적인 캐릭터에 갇혀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연극을 많이 보지 않아서 연극에서도 그런지는 몰랐다. 두 배우가 극 중에서 줄줄이 읊는, 나는 잘 모르는 연극계의 고전 작품들이 대부분 남성 배우 중심이고 중요한 여성 캐릭터가 거의 없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 구조도 특별히 창의적이라거나 혁신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두 배우의 일기를 충실히 따라가며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 특히 연극계 여성들의 어려움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영화로 치면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실제로 두 배우의 이야기이고, 두 배우의 일기를 바탕으로 대본을 썼으니, 두 배우에겐 이 연극의 대사들은 연기이면서 실제이기도 하다. 이게 이 연극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예상 가능한 내용과 전개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다큐멘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생생함과 생동감을 자아낸다. 이 덕분에 이 자칫 뻔하게 보일 수 도 있는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풍성한 감정을 담아낸다. 이런 생동감은 이를 테면 다양한 통계와 데이터로 이야기의 설득력을 더해낸 한 편의 르포와도 같은 느낌을 준 《82년생 김지영》의 방식과는 또 다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부당하다는 주장에 동의하게 만드는 것이 《82년생 김지영》의 방식이라면, 〈액트리스 다이어리〉는 현실이라는 벽에서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프로페셔널을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에게 공감하게 만든다.


사실 나로서는 제 아무리 머리로 생각하더라도 여성들이 겪는 경력 단절을, 그것을 마주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심지어 병역거부로 전과까지 있지만, 그리고 너무나 급변하는 세상에서 아무 기술도 없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은 되지만, 결혼을 한다고 혹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경력단절이라는 벽이 내 앞에 생기게 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 어마어마한 간극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연극이, 소설이, 영화가, 드라마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때로는 날카롭게 사회를 고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따뜻하게 여성 캐릭터들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때로는 기발하게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력을 펼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 좋겠다.



2호선 신촌역 근처 1M SPACE에서 12월 12일까지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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