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Jan 14. 2022

겸손한 목격자들

짧은 리뷰

나 어릴 때 장래희망 물으면 열에 아홉은 과학자를 이야기했던 거 같다. 특히 남자애들은 그레이트 마징가나 철인 28호, 메칸더V 같은 로봇 만드는 과학기술자가 꿈이었다. 나는 남들 다 하는 거 싫어서 식물학자가 꿈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장래희망 그리기를 했는데 내가 그린 식물학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비커와 삼각 플라스크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뭐 화학자라고 해고, 동물학자라도 해도 될 그런 모습. 식물학자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전혀 몰랐다. 역사와 문학을 좋아해서 문과에 가고 나서는 과학은 관심 밖이었다. 특히 지구과학 시간에 돌덩이 이름 외우는 거랑 생물 시간에 아밀라아제니 뭐 그딴 거 외우는 거 정말 싫었다.


과학책을 다시 보게 된 건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수학을 전공한 친구들 덕분이기도 했고, 출판사에 다니면서 철학이니 문학이니 인문사회 전공했다는 몇몇 저자들의 민낯에 질려버린 탓도 있었다. 수학이나 과학책도 읽어보니 재밌었는데 읽다 보니 과학사/수학사/과학기술사 분야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수한 과학/수학 이론보다는 과학/수학이 인간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탐구하는 책에 관심이 갔다. 정인경 선생님의 책들, 《사람의 자리-과학의 마음에 닿다》,《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사이보그가 되다 》 같은 책을 읽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리뷰를 썼다. 《겸손한 목격자들》이 궁금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철새, 경락, 자폐증, 성형은 내게 관심분야가 아니었지만 '연루'되었다는 표현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과학기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이 책 읽기를 시작했다. 연루되다는 표현이 "과학기술의 실행과 본성을 탐구하는 데에 더 관심이 많"(12쪽)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면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모르는 게 득이 된다.


책을 처음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랩 걸》 읽을 때 받은 느낌과 비슷했다. 과학자의 현장을 연구하는 책이다 보니 과학자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그랬던 거 같다. 특히 철새 조사원과 봉한관을 찾는 연구원의 현장을 다룬 앞의 두 장이 그런 경향이 강했다.


과학자의 일상이 심오한 이성적 활동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땜질 작업들로 가득 차 있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해석은, 지난날 실험과 여러 상황들에 매인 채 고군분투하던 나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157쪽)


네 명의 저자들은 다들 박사님이고 과학자고 성한아 선생님이 다룬 철새 조사원들과 김연화 선생님이 다룬 한의학물리실험실의 연구원들 또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과학자인데, 과학은 천재들이 하는 대단한 학문인 것만 같은데, 매번 실패하고 실수하고 걱정하고 좌절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찌어찌 임시방편으로 땜빵하는 생활인으로서의 과학자들의 모습이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숙련된 전문가인 과학자로서 해야 할 질문을 놓지 않는다. 과학이 무엇인지 내가 정의 내릴 깜냥은 안 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 생각이 정리되었는데, 과학은 결국 태도가 아닐까 싶다. 실험과 관찰이라는 방법론도 결국 태도의 문제로 수렴되는 거 같다. 자연세계에 대한 고정불변의 지식이 있어 그것을 찾거나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태도로 자연세계를 탐구하는 일이 과학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세계를 대하는 태도는 인간 사회를 대하는 태도로도 연결된다. 사회과학이 인간 사회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그때도 중요한 것은 고정불변의 무슨 법칙 같은 것을 찾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하고 검증하는 과학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의심하고, 증명하고, 검증하는 이의 태도는 '겸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제목인 《겸손한 목격자들》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많이 팔릴 제목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제목일 수 없다. 나는 이 겸손함이 전문가의 윤리이자 책임으로 읽혔다. 요즘 세상은 정말이지 자기가 모든 걸 다 안다고 떠들어대는 사짜들이 판을 친다. 뜯어보면 결국 진영논리에 지나지 않을 말들을 떠벌리거나 음모론을 서슴없이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세상의 주인인 양 행세한다. 특히 정치권을 둘러싸고 이런 이들이 포진해 있다. 이런 세상에서 전문가의 기본 소양이어야 하는 겸손함은 기본을 넘어 너무나 소중한 태도가 되어버렸다.


 책의 저자들에게서 엿볼  있는 겸손함은 단순히 자신의 지식이나 정보, 혹은 전문성에 대한 태도만이 아니다. 이들의 연구는 기존의 과학 현장과는 사뭇 다른 현장을 다룬다. 과학과 비과학이 섞여있고, 관찰자와 당사자가 엉켜있고, 옳음과 그름이 분간되지 않는 .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겸손은 결국 전문가의 지식이나 전문가의 경험에 대한 윤리적 태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 형성되고 합의되는 과정을 다시 돌아보고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껏해야 나는 그들과 다르게 알 수 있거나 다르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의 앎이 순수하지 않은 만큼 더 많은 다른 이들의 앎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82쪽)


이런 전문성을 앎이라고 해도 좋지만, 지적인 차원 말고 다른 차원으로 표현을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느낄 수 있다, 다룰 수 있다. (319쪽)


지식은 "상황적"(328쪽)이고 맥락적이다. 결국 전문가는 남다른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한 사람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맞는 과학적 실행을 해낼 수 있는 사람, 느끼고 다룰 능력이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전문가들의 지식이 상황적이고 맥락적이라면 전문가들이야 말로 겸손해야 되는 것이다. 세상을 다 아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고,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그 불가능성을 뼈저리게 느낄 테니까.


느끼고 다루는 앎으로서 전문성은 활동가로서 내게 시사하는 바도 크다. 나는 내가, 전쟁없는세상의 동료 활동가들이 병역거부운동에서 한국 사회에 둘도 없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법학자들처럼 대체복무 관련 법을 분석하거나 양심의 자유에 대한 법철학적인 논증을 할 수 없고, 행정학자나 직업 행정가/정치인들처럼 대체복무제도의 시행을 분석하거나 개선을 위한 아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왔고, 함께 목소리를 내왔던 우리만이 느끼고 다룰 수 있는 실천이 있다. 물론 한국 사회는 변호사, 교수, 국회의원에 비해 활동가들은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전문성이 앎이라면, 지식이 상황적이고 맥락적이라면, 우리의 느낌을 따라올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


나는 늘 활동가들이 흔히 말하는 '사'자 전문직들에 꿀릴 것 없는 전문가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우리(활동가들)는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들과 같은 전문가일 필요도 없고, 오히려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앎을 넓혀가야 하는 이들이다. 물론 우리의 태도는 늘 과학적이고, 겸손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 책을 보면서 느낀 마지막 지점이 그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보통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고 필요한 부분만 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기를 추천한다. 특히 네 저자가 대화를 나눈 마지막 부분을 빼먹으면 안 된다. 하나하나의 글이 완결적이지만, 네 편의 글과 한 편의 대화가 함께 있을 때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이 가능했던 것, 저자들의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이분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각자의 실행(실천)을 수행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제가 되고 버팀목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또 하나, 이 저자들의 글에서는 도통 과학을 통해서 진리를 밝힌다거나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명감 혹은 이름을 알리고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욕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단단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오랫동안 숙련한 기술과 노동으로 일궈낸 노동의 결실을 보며 뿌듯해하는 노동자의 미소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명감 혹은 부귀영화를 욕심냈다면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히 진행해야 하는 일을 견디지 못했을 테니까.


혼자 하지 말자. 동료를 만들자. 그리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자극이 되자. 사명감보다는 책임감을 갖자. 겸손한 전문가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액트리스 다이어리 ACT:LESS DIAR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