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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May 07. 2022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짧은 리뷰 


신간이 나오면 꼭 챙겨보는 작가가 있는데 정인경 선생님도 그중 하나다. 올초에 나온 책을 바로 샀는데, 올해는 책 읽을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어서 이제야 다 읽었다. 약간의 아쉬운 점도 있지만, 늘 그렇듯 재밌고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되고 생각에 자극이 되는 독서였다. 


아쉬운 점도 책이 부족한 게 있다기보다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아쉬움이거나, 정인경 선생님 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텍스트들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일 뿐이다. 책의 후반부인 4부 건강과 노화: 자연과 시간 앞에서5부 생명과 죽음: 팬데믹과 기후 위기 앞에서가 그랬는데 개인적인 관심사나 독서 이력에 따라 4부와 5부가 가장 좋을 수도 있다. 


나는 4부와 5부보다 1부 자존: '나'와 '너'의 균형 앞에서, 2부 사랑: 이해와 포용 앞에서, 3부 행복과 예술: 일과 놀이 앞에서를 재밌게 읽었다. 느낌, 감정, 사랑, 행복, 성격처럼 얼핏 보면 과학이 다루는 주제와 잘 안 어울리는 개념들을 과학의 언어로 설명한다. 다루는 주제들에서도 알 수 있는 바 물리학보다는 진화론, 신경의의학 같은 분야의 이야기가 많다. 모든 것이 과학이라거나, 과학으로 모든 것을 규명해내는 데 저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저자에게 과학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지, 우리는 꼭 행복을 느껴야만 하는지, 왜 사람마다 다른 성격을 가지는지' 저자는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생각을 이어가는데 생각의 방식이 바로 '과학'일뿐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개별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사회와 연결된다. 특히 현대사회가 마주한 사회적 문제-건강과 노화,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4부와 5부에서 과학은 사회와 강하게 연결된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한 사회가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낸 인식틀임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포유류의 번식-암컷의 관점'(124쪽)과 '성격의 탄생'(154쪽)이었다. 


포유류의 번식은 챕터 제목과 동명의 책인 <포유류의 번식-암컷의 관점>의 내용을 소개한 챕터다. 포유류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고, 특히 번식은 포유류 진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특성이라고 한다. 모든 유기물이 그렇듯 포유류 또한 더 성공적인 번식을 이뤄내는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이때 암컷의 관점으로 이를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유류 번식의 성공은 전적으로 암컷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배란, 수태, 착상, 출산, 젖분비와 같은 번식 과정은 모두 암컷이 주도하며 그렇기 때문에 암컷이야 말로 '진화의 능동적 참여자'이고 '번식의 주체'라고 한다.(130쪽) 그리고 포유류의 번식은 그 자체가 대단한 사회적인 활동인데, 사회성은 포유류 암컷의 탁월한 능력이라고 덧붙인다. 암컷의 관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예로 드는 것이 암컷의 관점이 결여된 잘못된 과학 상식인데, 이른바 '정자 경주'다. 남성의 정자들 중에 1등으로 난자에 도착하는 정자가 살아남는다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잘못된 과학상식이라는 것이다. 수태 과정에서 정자는 목표 달성을 위해 달리기 시합을 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난자는 가만히 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정자를 선택할지는 오히려 난자가 선택한다고 말한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암컷이 능동적인 개입을 하는 종도 있는데, 붉은사슴 암컷은 배 속에서 자식의 성별을 바꾸기도 하고, 암퇘지는 X염색체를 지닌 정자와 Y염색체를 지닌 정자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인식틀-암컷의 관점이 구성하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무척 흥미로웠다. 


MBTI가 대유행하는 시대에 성격에 대해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는 챕터인 '성격의 탄생'(이 챕터 또한 동명의 책 <성격의 탄생>의 내용을 소개해준다)도 재밌었다. 성격은 유전적 요인(선천적 요인)과 사회경험적 요인(후천적 요인)에 의해 구성된다고 한다. 내게 흥미로웠던 점은 다양한 성격의 유형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앞 챕터에서 행복에 대해 다뤘는데, 이 챕터에서는 성격과 행복을 연관 지어 설명한다. 외향적인 사람이 행복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이다. 행복은 외부 자극에 뇌가 활성화되어 얻는 감정적 보상인데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보다 세상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꼭 어떤 성격이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 성격의 차이는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특성이기 때문이다. 구피라는 물고기로 한 실험을 소개하는데, 구피만을 어항에서 키우면 외향적인 성격의 구피들이 생존율이 더 높다고 한다. 하지만 펌프킨시드라는 대형 육식물고기(천적 혹은 포식자)가 있는 어항에 구피를 넣으면 외향적인 성격의 구피들이 살아남기 더 힘들다. 포식자가 없는 강의 상류에서는 대담한 구피가 많이 살아남고, 포식자가 있는 강의 하구에서는 소심한 구피가 살아남기 쉽다는 것인데, 이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번식하기 위해 성격의 차이가 진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진화와 생존이라는 거창한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협업할 때 훨씬 더 많은 변수에 잘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오랜만에 정말로 일과 상관없이, 취미로 독서를 하고 리뷰까지 쓰니 기분이 좋아진다. 여전히 바쁘겠지만 정신없이 바쁜 나날은 지나갔으니 이제 다시 책도 읽고 글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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