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2019년 가을 어느 날, 오랜 친구인 한겨레 김완 기자와 점심을 먹고 지금은 사라진 카페 트랜스에서 차를 마셨다. 김완 기자 손목에 찬 갤럭시 스마트 워치가 눈에 띄었다. "스마트 워치 샀어?" 평소 옷이며 액세서리며 아무튼 예쁘고 신기한 걸 잘 구매하는 친구니 스마트 워치를 샀다고 한들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 경찰서에서 채워준 거야." 이게 무슨 소린가, 경찰이 왜 기자한테 위치 추적이 되는 스마트 워치를 채우지? 완이가 왜 그걸 차고 있지?
이유인즉슨, 당시 N번방 기사를 내고 난 뒤였는데 박사를 비롯한 일당들이 김완 기자의 신상을 털겠다며 가족의 신상을 알아오는 이들에게 현상금을 거는 등 협박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경찰에서도 예의 주시하느라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서 스마트 워치를 대여해줬다는 것이다. 관할 경찰서에 3개밖에 없는 거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완이는 잊지 않았다. 한 번은 큰 아들이 스마트 워치가 신기해서 밤 11시에 만지다가 뭘 잘못 눌러 비상상황인 줄 알고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N번방에서 모인 범죄자들이 김완 기자의 신상을 털고, 가족의 신상까지 털려고 했다는 말을 들을 땐 한편으로는 완이와 역시나 내 친구인 완이의 파트너와 아이들의 안전이 크게 걱정되긴 했지만, 뭐 설마 별일 있겠냐며 나에게도 김완 기자에게도 안심시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를 보면서, 이제는 경찰서에 반납했을 김완 기자의 스마트 워치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친구가 처한 상황에 적극 공감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미안해졌다.
추적단 불꽃과 한겨레 기자들의 노력으로 N번방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나 또한 경악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지옥의 풍경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끔찍함을 외면하고 싶었다. N번방 범죄자들의 악랄함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았을 뿐, 그들이 어떤 식으로 어떤 범행을 하는지는 이번에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사방 운영자 박사(조주빈)는 경찰에 검거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범죄자들이 흔히 그렇듯 스스로를 과시하는 저 말이 역겨운 것도 사실이지만, 박사니 갓갓이니 부따니 하는 치들을 악마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지나친 비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들의 악랄함에는 악마도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몇 명의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다. 지옥을 만드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큐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것처럼 그들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성착취물 영상을 구매하고 N번방에 들어가 있는 수십만 명의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고, 피해자들이 용기 내어 피해 사실을 알리기를 꺼리게 만드는 세상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상을 만든 것은 박사와 갓갓과 부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보통 사람들이다.
내가 N번방을 외면하고 회피했던 것은 그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N번방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낮으니까. 세상에 일어나는 끔찍한 범죄 중 하나로 치부하고, 가해 범죄자들을 욕하며, 피해자들이 회복되기만을 바라는 선까지만 관심을 가져도 내 일상이, 내 삶이 디지털 성폭력으로 흔들릴 일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큐를 보고 난 지금 내가 지옥을 만든 폭력적인 사회 구조의 일부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작가 프리모 레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고의적으로 태만했기 때문에 유죄라고 이야기한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중략)
아는 것, 그리고 알리는 것은 나치즘에서 떨어져 나오는 방법(결국 그리 오래지 않아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나는 독일 국민이 전체적으로 이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인간인가』중에서
N번방에 대한 나의 태도가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이지 않았을까? 나는 N번방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N번방에 대한 나의 책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나누어 갖는 공동체적인 책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옥에서 떨어져 나오는 방법의 시작이 알고 알리는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이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았다.
지옥을 만든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하자면 책임의 크기만큼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지옥을 우리들 보통 사람들이 만들었다면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다른 세상으로 변화 또한 우리가 만들어야만 한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범죄가 일어나고 별별 나쁜 놈이 많다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적어도 N번방 같은 일은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