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Aug 28. 2022

깻잎 투쟁기

짧은 리뷰 


이 책은 이주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우춘희 선생님이 한국 농촌에서 일하고 있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1500일을 깻잎밭에서 지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책 또한 전형적인 논픽션과는 조금 다르고 어떤 면에서는 르포처럼 읽히기도 한다. 제목에 깻잎이 붙은 까닭은,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대표적인 일이 깻잎밭 노동이기 때문이다. 다른 작물도 아닌 깻잎인 이유는 책에도 나와있는데 이주노동자자를 고용에 최적화된 시스템이 깻잎밭이기 때문이다. 노동집약적인 작물이며, 기계의 도움을 받기 어렵고, 단위 면적당 소득이 밭작물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깻잎이라고 한다.(134쪽) 과수원을 하다가 혹은 고추나 배추를 기르다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깻잎으로 재배 작물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책에 나와있는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참혹하고 참담하다. 책은 법과 제도의 변화를 짚어주는 동시에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열악한 주거환경, 그럼에도 임대료로 다달이 돈을 뜯어가는 고용주, 근로계약서보다 더 길게 일을 시키면서 더 조금 주는 임금, 그나마의 임금조차 체불되는 장면들,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한계,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성폭력,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현실들, 법의 공백과 미작동, 한국인 고용주들의 입장과 태도들을 다룬다. 


이 내용을 읽다 보면 첫 번째로 드는 느낌은 부끄러움이다.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부끄러움. 열악해도 너무나 열악한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처우를 보면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분노가 치밀 정도다. 두 번째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농촌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이 책에서도 자세하고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지만 책에 나오는 고용주들의 이야기로 미루어봐 한국의 농촌은 더 이상 이주노동자들이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우리의 밥상에 인터내셔널 한 것이 아보카도와 오렌지 때문이 아니었다. 한정식집에서 나오는 깻잎 무침에 이미 이주민들의 노동이 들어가 있다. 


고용주들을 욕하기는 쉽다. 물론 어떤 고용주들은 욕을 먹어도 싸다. 하지만 이 구조에서 고용주들만 나쁜 놈일까? 책을 읽다 보면 이 문제가 풀기 어려운 것은 한국사회의 팔이 안으로 굽어 고용주(한국인) 편을 들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농촌이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이 기형적이고 인권침해적인 구조의 맨 꼭대기에는 아마도 농촌을 착취하는 도시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농촌과 도시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고용주들의 볼멘 불만과 푸념의 소리에는 농촌이 처한 어려움이 깊게 깔려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고용주들을 처벌하고 교육하는 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뜻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는데, 이 감정이 요즘 내게 생소한 감정은 아니다. 한국인으로서의 부끄러움과 책임감. 요즘 내가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기수출 국가다. 한국산 무기가 전 세계 전 대륙으로 팔려나가고 국가 간 전쟁에서, 내전에서 쓰이고 있다. 독재정권이,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대가 한국산 무기를 쓰고 있다. 분쟁의 현장에서 한국산 무기가 쓰이는 영상이나 한국산 시위 진압장비와 무기가 인권 침해에 쓰이고 있는 정황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한국산 무기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의 액수만 자랑할 뿐, 무기 판매에 대한 책임을 고민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 정부가 무기를 팔아 돈을 벌었다면 그 무기의 쓰임에 대해서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한국 농촌 경제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에 기대고 있다면, 우리 모두의 식탁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그들이 한국의 논밭에서 일할 때 겪는 부당한 일들에 대해 우리는(한국 정부는)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BTS와 K-POP이 외국,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면, 삼성이 베트남 경제의 큰손인 게 뿌듯하다면, 외국인들이 한국 드라마 이야기하는 것에 어깨가 으쓱거린다면, 우리는 그에 합당한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김오키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를 떠올렸다. 이 책에선 한국에 와서 일하는 캄보디아인들을 한국사회가 어떻게 착취하는지를 보여준다면, 재즈 뮤지션 김오키의 곡(가사의 원작은 송경동 시인의 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은 캄보디아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 현지에서 한국 기업들이 현지인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한국 정부는 수수방관하는지를 노래한다. 




2014년 1월 2일
캄보디아 프놈펜 남서쪽 카나디아 공단 한국계 기업 '약진통상' 정문 앞에서
100여 명의 봉제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127개 공장이 파업 중이었다
공단 내 또 다른 한국 기업인 '인터내셔널 패션로얄' 노동자 피룬도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하루 평균 열 시간을 일하며 부자를 위해 비싼 옷을 만든다는 피룬의 월수입은 

한화로 14만 원, 한 시간 잔업수당 550원
지난 이년 동안 카나디아 공단에서만 4,000명의 봉제노동자들이 작업 중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네댓 명이 어울려 사는 두 평 남짓 쪽방 월세가 40달러 식비로 60달러가 나간다
십 년을 일했지만 남은 건 200달러 빚뿐 


"나도 '꿈'이란 것을 가져보고 싶다"
서른한 살 여공 파비가 댄싱 파업에 참가한 까닭이었다
춤추는 노동자를 향해 헌병들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한 건 오후 3시 30분 아무런 경고조차 없었다
울부짖는 소리 끌려가는 소리가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다음날인 1월 3일 분노한 카나디아 공단 노동자 1만여 명이 오전부터 거리를 가득 메웠다
아침 8시 내무부를 향하던 시위대가 이백 미터쯤 전진했을 때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죽고 삼십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피룬의 오른쪽 다리에도 총알이 박혔다
가까운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의사는 없었고 간호사들은 치료하지 못한다는 얘기만 할 뿐
응급처치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 시각, 시위와 관계없이 병원을 찾은 한 여성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여성은 되돌아가는 길에 숨졌다
단층집 옥상에서 시위를 구경하던 폭은 왼쪽과 오른쪽 발목 오른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
오토바이 택시 기사 세론은 손님을 기다리던 중에 총을 맞았고 

생선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임산부도 총을 맞았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병원을 향해 돌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은 유혈 사태 전 '긴급' 서한을 통해
"캄보디아 내 한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된다"고 

캄보디아 정부와 정치권의 강력한 개입을 요청했다
캄보디아에서 2012년 기준 한국은 중국을 제치고 캄보디아 투자국 1위를 지키고 있었다


비슷한 때인 2014년 1월 9일 방글라데시 남부 치타공에 위치한 '영원무역' 해외공장에서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다른 수당들을 삭감해 도리어 전체 임금을 깎은 사측에 분노해 

노동자들이 시위에 나섰다
월급날이었던 그날, 경찰의 발포로 갓 스무 살 여성 노동자 파르빈 악타르가 죽고 십 수명이 다쳤다
작년 말에 올랐다는 최저임금은 5,300타카, 한화로 7만 원 오르기 전엔 4만 원이었다


같은 날 1월 9일 새벽 6시 50분,
베트남 북부 타이응웬성 옌빈 삼성전자공장 신축현장에선
작업시간에 늦게 도착해 출입구를 뛰어넘어 작업장으로 들어가려는 한 노동자를
삼성보안서비스 용역들이 구타하고 전자충격봉으로 기절시키면서
4,000명의 베트남 건설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베트남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12만 원이었다


두 번의 수술을 남겨둔 피룬은 당분간 춤을 출 수도 미싱을 밟을 수도 없다
그날 이후 피룬의 병실을 방문한 한국인은 몇 명의 취재진 외에는 없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전 세계 부자 85명이 세계 인구 절반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이 지구별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 모든 게 경영상의 위기로 인한 정당한 정리해고이며 비정규직화라고
오늘도 방망이를 두드리는 법 앞에서 속수무책 망연자실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파르빈 악타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