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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Oct 24. 2022

크게 그린 사람

짧은 리뷰

은유 선생님이 한겨레신문에 인터뷰 꼭지 '은유의 연결'을 연재할 때 몇몇 글을 재밌게 본 터였다. 인터뷰글은 좋아하지만 인터뷰집은 평소에 거의 사지 않는데, 이 책은 우선 인터뷰어가 믿음이 갔고, 인터뷰이들의 면면도 흥미로웠다. 내가 좋아하는 시와, 김중미, 홍은전, 김혜정 같은 분들이 있었고, 내가 알고 있는 분들 모르고 있는 분들 또한 인터뷰이의 면면이 무척 흥미롭고 이런 사람들을 인터뷰이로 뽑은 안목에 신뢰가 갔다. 그래서 사놓고 한편 두 편씩 읽다가 최근에 마침내 다 읽었다. 더 끌리는 인터뷰이도 있었고, 더 기억에 남는 인터뷰도 있었는데, 두 가지 키워드로 이 책을 정리해볼 수 있을 거 같다.




진짜 자기계발서 


<크게 그린 사람>을 보면서 나는 아주 좋은 자기계발서라고 느꼈다.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들은 사회나 구조는 외면한 채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이 책은 인터뷰이들을 통해 개인의 노력과 사회의 문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세상의 문제만 이야기하지 않고 개인의 성찰과 노력을 이야기하되, 변화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지 않고 사회와 구조의 문제점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그래 나도 열심히 살아보자'하는 마음에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임현주 아나운서나 언리미트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의 노력하는 삶에 자극받고, 김진숙 지도위원이나 고 김용균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가인 김미숙 님이 겪은 삶의 고단함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이 아주 좋은 자기계발서라고 느낀 까닭은 이런 자극과 위로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계발서들에는 들어있지 않은 이야기들, 이 세상과 사회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이 인터뷰집은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다. 여성에게 차별적인 세상에 대한 인식 위에서 임현주 아나운서의 노력과 민금채 대표의 노력이 빛을 내고 있었고, 노동자들에 가혹한 세상을 직시하면서 노동운동가들의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최고의 책 홍보


은유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 책은 다양한 인터뷰이를 소개해주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쓴 책을 홍보한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인터뷰라고 한다면, 이 인터뷰들은 인터뷰이에 대한 궁금증을 그들이 쓴 책까지 확장시킨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는 몇 권의 책 목록이 쌓여있다.아픈 아버지를 돌보며 사회의 돌봄 노동에 대해 사유한 청년예술가 조기현이 쓴 <아빠의 아빠가 됐다>, 과학수사대 여성 경찰 원도가 쓴 <아무튼 언니>와 <경찰관속으로>, 김혜진 소설가의 <불과 나의 자서전>이 장바구니에 담겼다.  바로 주문하지는 않았지만 나중 되면 다 까먹을까 봐 일단 장바구니에 기록용으로 담아두었다.

시와의 앨범과 김중미 작가의 <곁에 있다는 것>, 홍은전 선생님의 <그냥 사람>,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금꽃나무>, 김현 시인의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은 이미 내가 책을 갖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음 장바구니가 넘쳐날 뻔했다. 해당 책을 낸 출판사들로서는 이보다 좋은 책 홍보가 없을 거 같다.



3부의 구성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책의 마지막인 3부의 구성이다. '사는 일 자체로 누군가의 해방을 돕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3부는 제목 그대로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서 해방을 위한 저항이 되는 이들의 인터뷰다. 3부에는 모두 6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모두 비남성이다. 다섯 명의 여성(김진숙 지도위원, 수신지 만화가, 김혜정 성폭력상담소 소장, 박선민 보좌관, 산재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김도현)과 한 명의 성소수자(김현 시인)- 비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1,2부도 남성보다는 여성의 비중이 높고, 책에서도 은유 작가가 여러 차례 언급하는바 이 인터뷰집 전반적으로 소위 잘 나가고 권력을 가진 남성들과는 반대쪽에 놓여있는 이들을 인터뷰가 다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3부는 (헤테로) 남성이 한 명도 없다. 1부와 2부에서도 세상과 싸우고 정의를 위해 저항하는 이들의 인터뷰가 실려있지만, 3부는 통째로 그런 이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존재'가 '저항'이 되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어느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무척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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