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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Feb 12. 2023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짧은 리뷰

큰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모든 이들을 애도합니다. 특히 시리아는 오랜 내전으로 건물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고 도로 등 기간 시설이 파괴된 상황이라 지진 이후가 더 걱정입니다.  



제목만 봐서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는데 부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전쟁터에서 총을 들지 않기란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만약 자신의 공동체가 부당하게 침략당한다면 어쩔 수 없이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을 들지 않겠다는 사람은 자기만 살겠다는 비겁한 사람으로 몰리거나 적에게 순순히 항복하자고 말하는 사람 취급을 당하곤 한다. 그런데 총을 들지 않았다니, 게다가 책으로 저항을 했다고? '탱크가 밀고 들어오고 미사일 포탄이 떨어지는데 책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보통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비폭력과 저항은 함께 쓰이기 어려운 단어라고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총과 칼의 폭력에 맞서 비폭력 저항을 택한다. 이러한 비폭력 저항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하고 많은 경우 폭력적인 저항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나는 비폭력의 힘을 믿는 평화활동가로서 전 세계 비폭력 저항의 사례를 더 많이 수집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러니 이 책의 부제를 보고 피해 갈 도리가 없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델핀 미누이가 쓴 이 책은 시리아 내전 당시 다마스쿠스에서 멀지 않은 다라야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아사드 정부군의 포위 공격에 맞서 저항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델핀 미누이는 우연히 알게 된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에 흥미를 느껴 취재하던 중 이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던 다라야의 청년들과 연결되고, 그들을 웹상에서 인터뷰하고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다라야의 비폭력 시민저항을 기록했다.


아랍의 봄 때 시리아 또한 아사드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지만 이는 안타깝게도 시리아 내전으로 이어졌다. 내전의 주요 갈등 축은 아사드의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군사적 대립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 납작한 분석이다. 뭇 전쟁이 그렇듯 시리아 내전 또한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갈등이 전쟁으로 번졌다. 미국, 러시아와 같은 외국 국가들 또한 내전의 주요 행위자고, 시리아 내 반아사드 파라고 해서 단일한 입장도 아니다. 반군 저항을 주도하며 군사적인 수단으로 아사드 정권에 맞서는 과격파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하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아사드의 본거지가 코앞인 조그만 도시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쟁과 독재에 맞선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다라야의 도서관지기들은 원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델핀 미누이의 주요 취재원이었던 아흐마드를 비롯해 샤디, 후샴 등 주로 20대 청년인 이들은 공과대학에 다니며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랐거나 농부, 혹은 프로그래머 같은 일을 하려던 이들이었다. 전쟁으로 사방이 폐쇄된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그들은 육지에서 찾지 못한 탈출구를 책에서 찾게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오랜 시리아의 시민 저항의 역사에 함께 했었고 많은 이들은 아랍의 봄 때 처음으로 해방감을 맛본 이들이었으며, 또 더러는 특별한 정치적 지향 때문이 아니라 고향땅을 떠나기 싫어 머문 이들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아흐마드는 친구들과 함께 무너진 집터에서 책 더미를 발견한다. 그중 한 권을 집어 들어 펼쳐봤는데 외국어로 된 책이었다. 서툰 실력으로 완벽하게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아흐마드는 마치 아랍의 봄 때 처음 시위를 참여했을 당시의 전율을 느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책을 읽는 행위가 아사드 정권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사드 정권은 모든 것을 검열하면서 지식과 정보가 책을 통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고 한다. 아마 아사드 독재 정권이 책을 불온시하지 않았다면 이 젊은 혁명가들은 전쟁터에서 책 따위는 불쏘시개라고 생각했을지도. 이들은 본격적으로 책 수집에 나선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일주일 동안 6000권을 모았고 한 달이 지나자 장서는 1만 5000권에 달했다. 정권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폭격으로 지상이 부서진 어느 건물 지하에 안전한 공간으로 책을 옮기고 이곳을 도서관처럼 꾸몄다. 다라야의 시민들은 폭격이 뜸한 틈을 타 이곳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빌려가기도 했다. 정부군과 싸우는 군인들도, 젖먹이 아기를 보살피는 엄마도, 학교가 무너져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읽을 수도 없었던 청소년들도.


정부군의 폭격에도 버텨나가던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끝까지 버텼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다라야의 고립에 대해 생색내기식 대응만 이어갔고 아사드 정권의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 책에 묘사된 아사드 정권의 폭력성과 잔학성을 보고 있자면 살인마 전두환이 신사처럼 느껴질 정도다. 유엔과 협의하에 구호물품을 다라야에 보내는 것을 약속하고 구호 차량이 다라야에 들어가기 직전 어깃장을 놓아 못 들어가게 하고선 물품을 받으려고 모여있던 주민들을 폭격하는 일 정도는 잔혹함으로 따지자면 중급 정도밖에 안 된다. 이 책에 나온 것들만도 이 정도인데, 너무 심해 차마 쓰지 못한 이야기와 델핀 미누이에게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가득일 것이다.


구호물품을 받으려고 모여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건, 목숨에 대한 위협보다는 절망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항을 이어간다. 때때로 어려운 상황은 저항자들을 강하게 이어주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극한의 폭력이 개별적인 사람들에게 가해지면 우리의 인간성이 파괴되고 저항할 힘을 잃지만 집단의 경우는 다르다. 권력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저항하는 이들을 고립시켜 철저하게 개인으로 존재하게 만들려고 한다. 다라야는 고립되었지만 집단이었고, 그래서 저항을 이어갔다. 아사드는 이들에게 절망이라는 감정을 심고 싶었을 것이다.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다라야의 시민들이 총을 아예 안 든 것은 아니다. 도서관의 주요 멤버 중 하나인 오마르는 군인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가 정부군과 대치한 전선에 자신만의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라야의 시민들이 정부군에 맞서는 전략인 군사적인 방식에 의존했냐고 하면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들이 총을 든 것은 점령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지, 전투를 통해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마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총을 든 광주시민들을 군사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이들로 볼 수 없는 것처럼) 이들의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니라 오히려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전략은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총과 칼을 무기로 삼았다면 아사드 정권은 더 큰 고민 없이 더 이른 시점에서 다라야를 짓밟았을 것이다. 왜 도서관을 만들었냐는 저자의 질문에 대한 아흐마드의 대답이 다라야의 시민들의 어떤 저항을 생각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떄, 우리는 저항의 상징으로 무언가를 세웠습니다. (한참 생각에 잠겨 말을 멈춘 뒤) 우리의 혁명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을 위한 것입니다."(25~26쪽)


다라야에서도 전쟁 초기에는 외부에서 온 극단주의자들이 분명 있었지만, 다라야의 시민들은 저항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방향을 명확하게 하면서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쥘 수 없게 만들었다. 이들은 정부군의 폭격과 고립으로 인한 굶주림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비폭력이라는 대전략을 유지하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이 책만 봐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다라야 라는 도시가 쌓아온 역사와 아랍의 봄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꿈이 만나서 그리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책의 주인공들은 아니지만 이야기 곳곳에 다라야 의회가 등장한다.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도 지역의회가 대표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었고, 군대 또한 의회의 통솔하에 있었다는 점이 극단적인 무장세력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이유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우스타즈의 말처럼 거기엔 아이러니한 우연도 작용했을 것이다.


"포위 공격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급진적인 시도로부터 보호해주었어요. 포위된 덕분에 다라야의 정신이 꺠어 있을 수 있었습니다."(231쪽)


다라야의 저항은 비폭력이 왜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지역의 저항은 아사드 정권과 맞서기는 하나 동시에 내부에서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소수파를 탄압했다. 하지만 다라야에서는 책에도 소개된 바, 여성 시민들이 프랑스 정부에 구호물품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는 등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보장되었으며 베일을 강제로 쓰게 하는 일도 없어 보였다. 다라야 도서관의 젊은 혁명가들의 연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가 이슬람에 갖고 있는 여성에 억압적이다는 편견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은 2016년 주민들이 강제로 마을을 떠나게 될 때까지 운영되었다. 아사드 정부는 주민들이 떠난 뒤 이 불온한 도서관을 발견하고 도서관을 폐쇄한 뒤 소장 도서는 인근 지역 벼룩시장에 내다 버렸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의 마지막은 저자인 델핀 미누이가 왓츠앱과 스카이프로 만나던 자신의 취재원들, 다라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저항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끝을 맺는다. 고립된 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책으로 세계와 연결되었던 이 젊은 저항자들은 저항을 멈출 생각이 없다.


인류 최악의 비극이라 불리는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아사드 독재 정권과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인 과격파가 주요하게 전선을 이루고 있지만 이들 양쪽의 극단주의를 모두 반대하며 민주주의의 확장을 바라는 소수의 저항그룹도 있다. 이들이 시리아 내에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기나긴 전쟁은 끝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저항자들 곁에 서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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