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벌금 약식명령받은 거 확인하려고 형사사법포털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지금까지 낸 벌금이 수백만 원이다. 다 데모하다가 생긴 벌금이고 다른 죄는 없다. 워낙 옛날 기록도 있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 벌금, 내 기억과 금액이 다른 벌금도 있다.
벌금이란 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당사자인 나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벌금을 선고받고, 얼마나 받고, 어떻게 납부하는지에 따라서 벌금형은 활동가에게 좋은 기회일 수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002년 나는 국회국방위원장실을 점거하다 연행되었고 그 일로 벌금을 선고받았다. 내 기억엔 그때 벌금이 100만 원이었는데 형사사법포털에서 검색한 바로는 그 비슷한 시기에 200만 원을 납부한 기록밖에 없다. 총학생회 사무국을 했던 과 선배가 친한 학생처 직원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 직원분이 어떻게 해결해 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게 나쁜 기억인 까닭은, 벌금을 받게 된 그 액션 과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국방위원장이 누군지도,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 채 조직에서 내려온 계획대로만 움직였다. 내가 속한 학생운동 그룹 중앙집행국에서는 훈방조치될 거라고 했고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는 거짓말로 대답하길 바랐다. 당시 나는 충성스러운 조직원이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했는데, 경찰도 나도 서로 다 아는 상황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한 당시 국방위원장실에서 장영달 국방위원장과 갑작스러운 면담을 했는데 그야말로 무지와 무식을 드러냈던 것도 나에겐 창피한 일이다. 이때 수치를 곱씹어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이 일을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기록했다.
대학 때 김포 지역 철거촌에 연대 활동을 다녔는데, 그때 어느 집회에 참여한 뒤 경찰에서 소환 조사에 응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학생운동 조직 중앙집행국에 물어보니 안 가도 된다고 했다. 그러려니 하고 세월이 지났다. 대학 졸업하고, 전없세 활동을 하면서 유엔인권위에 갈 일이 생겼다. 처음으로 외국을 그것도 스위스 제네바를 가게 된 것이다. 근데 단수 여권을 만드는데 벌금을 내지 않은 사건이 있어서 만들 수 없다는 거였다. 부랴부랴 벌금을 내고 여권을 만들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때 돈도 없었는데 무슨 돈으로 벌금 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벌금 대응을 제때 하지 않아서 유엔에 가보는 좋은 경험을 쌓을 기회를 놓친 것이 무척 화가 났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때 연행된 일로 재판을 받고 벌금을 내게 되었다. 당시, 충분히 연행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집회가 끝나가는 새벽녘, 저 멀리서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해서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내가 있던 곳에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동지들이 싸우는데 우리가 힘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더니 차도로 뛰쳐나가 구호를 외치면서 인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빨리 동참하라고 외쳐댔다. 나는 그게 딱히 저쪽에서 싸우는 동지들에게 도움이 될 거 같지도 않았고 불필요하게 연행되는 사람만 늘어날 거 같아서 마뜩잖았는데 내 일행들이 다들 거리로 나가니 할 수 없이 따라 나갔다. 이 일로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은 몇년이 걸렸고 최종적으로 2015년에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같이 연행된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높은 금액이었는데 아마도 전과가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퇴사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라 벌금이 나오면 노역을 살려고 했는데, 퇴사하기 전에 재판이 마무리가 되었다. 벌금 안 내고 버티고 있었는데 어느날 내 카드가 막혀버렸다. 벌금을 안 내고 있으니 카드를 막아버린 것이다. 교통카드 기능도 안 되어 집에 갈 수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벌금을 납부했다.
좋은 기억이라고 말하긴 좀 민망하다. 내가 받은 벌금은 아니라서. 하지만 그래도 이건 전없세의 집단 기억이니까. 강정에서 구럼비 발파를 막는 액션을 하다가 전없세 활동가들이 여럿 연행되었고 많이들 벌금을 받았다. 그중에 오리랑 여옥이가 나중에 임보라 목사님과 함께 벌금에 불복종하고 노역을 사는 퍼포먼스를 했다. 물론 벌금 전액을 다 노역으로 산 건 아니었지만, 노역을 살러 들어가면서 기자회견도 하고 또 감옥에 가는 강력한 이미지를 통해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점을 한국사회에 알리고 아무튼 효과 만점이었다.
이번에 받은 벌금은 사실 액수만 보자면 나쁜 기억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비슷한 액션을 여러 번 했지만 이런 벌금은 정말 금시초문이다. 그렇지만 나쁘게 기억되지는 않을 거 같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의 의미와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한 채 직접해동을 했고, 참가자들 모두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스스로 판단하고 참여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에서 결과적으로 벌금형이 확정되어 전과가 생기더라도 우리는 사회의 정의 앞에서 떳떳하다. 그리고 벌금 액수가 좀 과하지만, 벌금형을 선고받고 재판을 받는 과정도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모금하면서 또 재판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우리가 왜 무기박람회 저항행동을 해왔고 앞으로 할 것인지를 말할 기회가 생긴 거니까. 평소에는 아무리 전없세 블로그에 글을 써봤자 읽는 사람 고작 몇백 명인데 이렇게 벌금 받고 재판받고 그러니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물 들어온 거다. 노만 젓기 아까우니 모터까지 돌릴 것이다. 모금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도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재밌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는 걸 눈으로 보는 것이니 힘도 난다.
어쩌면 우리를 고발한 DX KOREA 조직위원회는 벌금으로 우리의 힘을 꺾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오히려 벌금 덕분에(?) 우리의 힘을 발견하고 있다. 직접행동 기금 모금에 많은 이들이 마음을 보태주는 것을 보면서 새삼 우리의 활동이 가진 힘을 깨닫게 된다. 무기 박람회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 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 무기거래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기회도 생겼다.
정부는 벌금으로 우리의 평화행동을 막을 수 없다.
우리가 아니라 전쟁무기 팔아 돈을 버는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