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반복에 뒤따르는 지겨움을 이겨내기 위하여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정치적인 면때문에 싫어하는 시인이지만, 시 자체는 너무나 아름다운 서정주. '국화옆에서'는 저렇게 시작한다. 소쩍새가 우는 것, 혹은 천둥이 치는 게 과연 국화꽃이 피는 것과 무슨 과학적인 관계가 있겠냐만, 상관없는 것들을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연결했기 때문에 이 시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나는 정작 이 시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그렇게"라고 생각한다.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소쩍새 울음도, 천둥소리도 아니라 "그렇게"로 표현된 무수한 반복이 아닐까. 세상 모든 일, 모든 결과물은 그것이 국화꽃의 개화 같은 자연의 일이든 아니면 인간의 일이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무수한 반복이 쌓였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서정주는 딱 두 연을 통해 말하고 있는 거 같다.
무언가를 일구어낸 대단한 사람들의 성취는 모두 우리가 보지 못한 무수한 반복에 기대 있다. 스테픈 커리는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는 3점슛을 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슛연습을 했을까? 슬램덩크 강백호가 여름방학 특훈 때 점프슛을 익히려고 2만 개에 도전했는데 스테픈 커리는 모르긴 몰라도 수백만 개의 슛을 반복해서 던졌겠지. 지금 메이저리그 홈런왕을 가시권에 두고 있는 오타니는 홈런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윙 연습을 했을까? 그가 돌린 배트에 아마 발전기가 달려있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오타니는 평생 전기 걱정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피아니스트의 연주, 화가의 붓놀림, 요리사의 칼질 모두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무수한 반복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사회운동도 마찬가지다. 캠페인이 성공하려면, 혹은 사회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수한 반복이 바닥에 깔려야 한다. 돈이 되는 영역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지만(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개발되는 신기술들을 보라!) 돈이 되지 않은 영역에서는 변화는 무척 더디다. 그러니 활동가들은 법 하나를 만들거나 바꾸기 위해서 한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또 하고, 조금 다르게 해 보고, 많이 다르게 해 보고, 다시 똑같이 해보기를 수년에서 십수 년을 반복하게 된다.
내 경우는 병역거부 캠페인이 그렇다.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가두지 마라.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라,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 이 주장을 2003년부터 2018년까지 반복해서 했다. 기자회견문을 쓰고, 보도자료를 쓰고, 칼럼을 쓰고, 성명서와 논평을 쓰고, 유엔 기구들에 보낼 리포트를 쓰고, 정부에 보낼 질의서를 쓰고, 블로그나 SNS에 넋두리를 쓰고, 쓰고 쓰고 또 쓰고.
나중에는 이 일이 너무나 지겨웠다. 같은 말을 십수 년 동안 계속 쓰려니 지겨워 미칠 거 같은 때도 있었다. 수십 번 쓴 논평을 조금 다르게 써보려고 문학작품을 인용도 해보고, 격문처럼 쓰거나 일기처럼 써보기도 해 보고. 나름 신선한 시도들도 있었지만 언발에 오줌누기였다. 새롭다, 잘 봤다는 반응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지만 지겨움이 훨씬 컸다. 밥벌이니까 견뎠다. 만약 취미생활이었다면 그 지겨움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단계 성장을 위해 필요한 지루한 반복 연습을 견디지 못해 기타 레슨을 접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반복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대체복무제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도입되지 않았다. 국회는 자신의 역할을 팽개치고 사회적 합의를 핑계 삼아 징벌이나 다름없는 제도를 만들었다. 도입은 되었지만 개선할 것이 한가득이다. 그래서 병역거부운동은 20년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해야만 한다. 바뀐 건 "대체복무제 '도입'하라"에서 "대체복무제 '개선'하라" 정도다. 유엔 자유권위원회 심의에 제출한 시민사회 보고서를 쓰고, 유엔인권위의 국가별인권정례검토에 제출한 정부보고서의 반박 보고서를 쓰고, 유엔인권최고사무소가 작성하는 병역거부 리포트에 한국 상황을 쓴다.
죽어라고 반복해야 조금씩 바뀌는 일. 사회운동만 이러겠나. 변화를 위해, 성장을 위해, 성공을 위해, 결과를 위해서는 무수한 반복을 견뎌야 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찬가지다. 다들 그러고 사는 게 아닐까. 소쩍새는 얼마나 지겨웠겠나. 천둥은 또 얼마나 지루했겠나. 이 지겨움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 위안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지겨움을 견디기로 한다. 쓰다가 지겨우면 이렇게 딴 글도 쓰고, 다른 자료나 책도 읽으면서. 유엔인권최고사무소 리포트 작성하다가 지겨워서 딴짓하느라 이 글을 쓴다. (조금 딴 이야기인데 희정 작가님의 신간 <베테랑의 몸>을 읽어보고 싶다. 무수한 반복 노동으로 몸이 동작을 기억하는 베테랑들의 삶을 바라보면 지겨움도 잠시나마 잊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