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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Sep 18. 2023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드래프트

응답하라 1993

얼마 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끝났다. 2라운드 지명권이 없던 기아팬들은 3라운드에서 포수 최대어인 이상준을 지명하자 환호성을 질렀고, 3년 연속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한 한화팬들은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3년 연속 꼴찌를 한) 씁쓸한 과거를 곱씹었을 테다. 가슴 떨리는 하루를 보냈을 드래프트 신청 선수들 모두에게,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신인 드래프트는 스포츠팬들이 무척 기다리는 이벤트다. 물론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드래프트를 되돌아보며 최고의 드래프트가 언제였는지를 따져보는 건 스포츠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떡밥 중 하나다. 


예를 들면 미국 프로농구 NBA에서 최고의 드래프트로 손꼽히는 해는 역시나 그분 마이클 조던을 시카고 불스가 3순위로 뽑은 1984년이다. 조던이 불세출의 선수지만 그 하나만으로 그해 전체가 최고의 드래프트가 될 수는 없다. 최고의 테크니션 센터이자 휴스턴을 우승으로 이끈 하킴 올라주원(1순위), 요새는 입만 털지만 선수시절에는 상대방 골밑을 털었던 찰스 바클리(5순위), NBA 역대 최다 어시스트 기록자인 존 스탁턴(16순위)까지 모두 4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배출했다. 이에 비견할만한 해는 2003년 드래프트. 역대 최다 득점에 빛나는(이렇게만 수식하면 오히려 르브론을 평가절하하는 거다. 르브론은 득점만 하는 선수가 아니니) 르브론 제임스, 최고의 득점원 카멜로 앤서니(3순위), 히트의 심장 드웨인 웨이드(5순위), 르브론 웨이드와 함께 우승을 합작했던 크리스 보쉬(4순위)까지 명예의 전당 헌액 예상자가 많이 몰려있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드래프트는 언제일까? 많은 사람들이 2006년을 떠올릴 듯하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대 계약금을 받은 속이 꽉 찬 남자 한기주, 메이저리그에서도 롱런하고 있는 류현진, 실력만큼은 최고인 음주운전 범죄자 강정호, 현역 최고의 포수 양의지, 올스타 레벨의 민병현, 황재균, 쏠쏠한 활약을 펼친 원종현, 이재원, 이명기 등이 뽑혔다. 


하지만 나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는 바로 1993년 드래프트(1992년 11월 5일 진행)라고 생각한다. 한국 프로야구에 존재하는 유이한 신인 종범신과 양신만으로도 최고로 불릴 만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이해 가장 높은 계약금을 받은 선수는 20승 투수가 되어 LG에 우승을 안긴(LG가 우승을 한 적이 있긴 있다) 야생마 이상훈이었다. 프로입단 전 이름값으로는 이상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것 없는 투수 김홍집(태평양 지명)은 오히려 프로에서 안 풀린 케이스. 빙그레(현 한화)가 지명한 한양대 투수 구대성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는 왼손투수가 되었다. 삼성이 지명한 박충식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15이닝 완투를 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고, 해태의 마지막 에이스 이대진도 이해 신인이었다. 연속경기 출장에 빛나는 철인 최태원도 빠지면 섭섭할 거고, 소속팀에서 나름 준수한 활약을 펼쳤던 성영재, 허준도 93년 드래프티다. 안 좋은 쪽으로 이슈가 많았던 노장진도 불같은 강속구로 꽤나 주목받는 투수였다. 공포의 외인구단 마동탁을 똑 닮은 마해영 또한 군복무를 마치고 95년에 데뷔했을 뿐이지 93년 롯데가 지명한 선수였다. 작년 KBO가 프로야구 40주년을 맞아 선정한 레전드 40인에 93년 드래프티는 이종범, 양준혁, 이상훈, 구대성 4명이나 선정될 정도였다. 


여기까지만 써도 1993년 드래프트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해가 최고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이 선수, 해태타이거즈에 2차 지명 2라운드에 뽑힌, 단국대 출신 왼손 외야수 때문이다. 당시 해태는 오른손 타자 일색이었기에 더욱 (나 혼자) 기대했던 선수, 전성기(라고 부를 시절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가 짧아서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기억 못 하지만 나는 기억하는 선수,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억해야 하는 선수, 이용석 선수가 뽑힌 해가 바로 1993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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