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소식지를 없애고 홈페이지 안에 블로그를 만들어서 운영한 지 어언 9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되게 열성적으로 기획을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다고 느낀다. 뭔가 획기적으로 새로운 경험이 채워져야 새 기획이 나오는데, 전없세 사무국으로 다시 돌아온 지도 9년째이니 더 이상 내 안에 새로운 것이 없다. 더욱이 작년 연재 꼭지 중에서 [동물+전쟁]은 주제의 어려움 때문에 필자들도 글감 찾기를 어려워했는데 그때마다 내 공부가 부족해서 적절한 조언을 해주지 못했다. 기획도, 편집도 여러모로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이 일이 싫지는 않다. 내 능력이 부족할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늘 나는 전없세 블로그 글 삼을 게 어디 없나, 글 써줄 필자가 어디 없나 레이더를 켜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레이더에 어떤 글이나 사람이 포착되면 작전을 짜고 무조건 섭외를 시도한다. 내 가장 큰 장점이, 실패나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전없세가 이제는 나름 인지도와 위상을 쌓은 평화운동단체라는 것이 작용해서지만, 대부분의 필자들은 전없세 블로그 글 청탁을 거절하더라도 제안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기는 분이 많다. 그리고 내 인생 경험상 거절이 쌓이면 언젠가는 승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거듭된 거절은 어쩌면 승낙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내게 필자들은 지금 승낙한 사람과 앞으로 언젠가는 승낙할 사람으로만 구분된다.
아무튼 2024년 블로그 연재 꼭지도 기획해야 하는데, 여러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다. 나는 그것들을 운영위 워크숍에 가져갔고, 논의를 거쳐 그중 2개의 연재 꼭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2월 1일 발행하는 뉴스레터로 먼저 공개했다.
기획의 시작은 참여연대 지원님과 술자리였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여성평화활동가의 에세이를 모아서 전없세 블로그에 연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없세 블로그를 수년째 운영해 본 결과 연재 꼭지 필자가 4명은 되어야 필자들이 부담을 갖지 않았다. 전쟁 만화 리뷰와 전쟁 드라마 리뷰를 번갈아가며 연재한 오수경, 조경숙 두 분이 예외적인 분들이었다(심지어 이 두 분은 빵꾸도 안 내고 마감도 늦은 적이 한 번도 없다) 4명을 모으면 대충 일 년 동안 2~3편씩만 쓰면 되니까. 아무튼 여성평화활동가 에세이를 쓸 필자를 3명은 더 모아야 했다.
지원님에 이어 떠올린 사람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전없세 블로그의 에이스 뭉치였다. 2023년에는 [동물+전쟁] 연재 필자이기도 했는데, 뭉치 역시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으니까. 뭉치도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 기획은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운영위 워크숍 때 이 기획안을 발표했다. 다른 운영위원들도 다들 찬성하면서 기획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왜 '여성' '평화' '활동가' '에세이'인지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군사주의와 가부장제, 젠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활동가들의 일상에 대한 성찰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두 명의 필자를 더 섭외하기로 하고 의논을 이어갔다. 훌륭한 여성활동가들이야 너무나 많지만, 전쟁없는세상이 생각하는 맥락에서 에세이를 써줄 사람들을 추려갔다. 그리고 아무도 기준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이가 더 젊은 활동가들을 이야기했다. 전없세 블로그 필자 섭외 원칙 같은 것은 없는데 그냥 경향적으로 우리는 비남성, 교수 대신 활동가, 나이 많은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을 섭외하는 편이다. 나이 많은 남성 교수라면 전없세 말고도 지면이 많을 테니.
그렇게 추리고 추려서 소라 님과 토란 님에게 청탁하기로 했다. 두 분 다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다. 토란님은 여성활동가 인터뷰집 리뷰를, 소라님은 병역거부 역사전시 리뷰를 써주셨다. 이미 검증된 필진들이다. 두 분 모두 전쟁없는세상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이 연재를 소개하는 홍보물을 만들면서는 어떤 이미지를 써야 하나 고민했다. 대체로 '여성' 타이틀을 다는 책이나 홍보물이 주로 쓰는 이미지와 색깔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들이 주로 쓰는 데는 다 까닭이 있는 법.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하자니 나는 디자이너도 아니고, 보는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여러 이미지를 살펴보다가 우주 느낌이 나는 귀여운 이미지를 발견했다. 파란색의 색감도 마음에 들었다.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 때문인지, 우주와 행성이 여성활동가의 이미지와 들어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전형적이지 않으면서도 의미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찾아놓은 이미지와 레퍼런스를 싹 다 지우고 이 이미지로 홍보물을 만들었다.
그렇게 2024년 전쟁없는세상 블로그 연재, '평화를 살다-여성활동가 에세이'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크게 기대하고 있고, 가장 먼저 이 분들 글 기다리고 있다.
이분들 글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전쟁없는세상 뉴스레터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