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나는 뭐가 되고 싶었을까? 내 인생의 첫 꿈은 역사학자였다. 웃긴 게 초등학생 때 삼국지를 읽고 나서 너무 재밌어서 역사학자를 꿈으로 정했는데, 그 당시 내게 삼국지는 역사책이 아니라 소설책이라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내게 좋았던 것은 이야기와 캐릭터지 역사는 아니었으니 내가 제대로 알았다면 나는 소설가를 꿈꿨을 것이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는 시인이 되는 것을 꿈꿨다. 정확히는 김남주의 시를 읽고, 나도 김남주처럼 시를 혁명의 무기로 삼고 싶었으니 이 또한 시인이 아니라 혁명가가 꿈이었던 거지. 그런데 그때도 내게 이런 말을 조언해 줄 사람은 없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거지만 역사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혁명가가 되기 위해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혁명을 하는 시인이 되기 위해 역사학과에 갔다. 물론 역사과목을 좋아했다. 그리고 틈틈이 시를 찾아 읽었다. 김남주, 박노해, 백무산 같은 국내 시인, 하이네, 네루다, 브레히트 같은 외국의 혁명 시인들 시도 기회가 되는 대로 찾아 읽었다.
특히 감옥에서 시를 많이 읽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옥살이라는 게 시 읽기에 좋은(?) 환경이다. 그 안의 고독, 고립, 외로움 같은 감정들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내게는 시였다. 나와 동갑내기인 박연준 시인의 시집, 도종환 시인의 시집은 가석방 떨어진 줄 알고 낙담했을 때 읽었고. 기형도, 나희덕, 장석남, 백석의 시를 몇 번이고 읽었다. 감옥 가기 전후에는 가방에 시집 한 권을 늘 넣어 다녔던 거 같다. 시인이 되어 혁명을 하겠다는 생각을 그때까지 진지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시가 좋았다.
시에서 멀어진 것은 나이 서른에 출판사에 들어간 이후. 출판노동자 동료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들, 고은 시인의 추태와 같은 무수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는 더 이상 시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이때부터 과학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시와 시인들의 세계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던 마음이었을지도. 아무튼 그렇게 나는 20대에 시집을 많이 읽는 사람에서 30대 이후에는 시집을 사지도 읽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를 늦은 생일 선물로 받은 게 작년 초. 벽돌책도 아닌데 다 읽는 데 1년이나 걸렸구나. 신형철 평론가가 겪은 시들에 대한 이야기다.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이게 부제인데, 내가 가장 인상 깊은 시는 프롤로그의 주인공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와 에필로그에 나오는 박준 시인의 시였다. 물론 책에 나오는 다른 시들, 이영광의 '사랑의 발명'이라든지 에밀리 디킨스의 시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등등 모든 시와 시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다 좋았지만, 내 감정을 가장 크게 반응시킨 것은 에필로그와 프롤로그였다.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김남주 시인이 브레히트, 마야코프스키, 하이네, 네루다 이 네 명의 시인들의 시를 엮어서 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는 이 시집을 감옥에서 그렇게나 구해보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했고, 출소해서 샀다. 네 명의 시인 중에 브레히트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가장 좋아하는 시에 속했으니 <인생의 역사> 프롤로그에서 만나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을 통해 새로운 사실과 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독법을 알게 되었다. 이 시는 공적으로 발표된 작품이 아니라는 것, 브레히트가 루트 베를라우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에 적힌 글이 시로 수습되었다는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루트 베를라우를 '브레히트의 공동집필자이자 연인'이라고 소개했다가 황급히 이렇게 소개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어진 글을 읽어보면 아마도 베를라우를 '이기적인 남성 문인에게 재능을 착취당한 여자'라는 세간의 해석이 있는듯하고 신형철 평론가는 베를라우가 쓴 회고로 <브레히트의 연인>을 바탕으로 그녀를 "뜨겁게 살고 사랑하고 쓴 여성"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아무튼 브레히트와 베를라우 둘 사이의 관계와 상황을 알고 봤을 때 시는 브레히트가 베를라우에게 건네는 세뇌인지 기묘한 사랑고백인지 모를 말이 된다.
박준 시인은 내가 시를 멀리하는 동안에도 시집을 사게 된 드문 시인이었다. 에세이집도 잘 팔리는 작가인데, 나는 그를 심야 라디오 디제이로 알게 되었다. 지금은 디제이가 바뀐 '시작하는 밤'이라는 프로그램. 나긋하고 착한 말투의 남자 디제이가 자분자분하게, 그렇지만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물론 틀어주는 음악도 내 취향이었다. 내가 보낸 사연을 읽어주기도 했는데, 다른 방송에서는 내 사연을 읽더라도 '병역거부자'라는 단어를 일부러 빼고 읽는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박준은 그러지 않았다. 마침 김남주의 시 '저 창살에 햇살이'를 소개하고 있었고 내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있을 때 그 시를 즐겨 읽었다는 사연이었는데, 공중파 라디오 디제이의 입에서 '병역거부'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그는 전업작가가 되어 성공하고 싶은데 책이 안 팔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연을 보낸 청취자에게, 송경동 시인의 시를 소개하며 노동과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것이 호감으로 작용해서 박준 시집을 사서 읽었지만, 굉장히 감각적이라는 느낌만 남을 뿐 시가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인생의 역사> 에필로그에 담긴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을 읽으니 박준의 시를 읽어내는 방법을 내가 몰랐구나 싶었다. 박준의 시가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 관계를 관찰하고 드러내는 방법에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니 시가 다르게 읽힌다.
시를 안 읽기 시작한 이후로, 과학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아름다운 문장보다는 명료한 문장을 좋아했다. 이 책 <인생의 역사>는 시집은 아니지만, 시집만큼이나 아름다운 문장과 표현으로 가득한데, 어쩐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시를 무척 좋아했던 20대 시절로 돌아간 기분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 덕분에 조금은 시 읽기가 재밌어진 것 같다. 평론가의 역할이란 이런 게 아닐까. 특정한 연습이 필요한 일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일. 책장에서 박준 시인의 시집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