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정 선생님 페이스북에서 2월에 출간되는 단행본의 주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가 군사주의가 어떻게 이 세상을 망쳤는지에 대한 비판이라는 글을 보고선 지체 없이 연락을 했다. 일전에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성 주인공들은 왜 군사적인 영웅으로만 재현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글 '공주들의 세계, 영토의 경계 안에 갇힌 상상력'이라는 빼어난 글을 기고해 주셨는데, 그 문제의식을 발전시킨 책이겠거니 했다. 그동안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글을 청탁하거나, 행사 사회로 섭외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손희정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전쟁없는세상에서 마련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했다. 손희정 선생님은 흔쾌히 특강을 승낙했고, 영광스럽게도 출판사 공식 북토크보다 먼저 전쟁없는세상이 신간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북토크를 하게 되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서점에 가서 사 보면서 나는 감탄과 더불어,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킨 책이라고 생각했던 내 추측이 얼마나 협소한 생각이었는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책 전반에 깔려있다. 예를 들어 인류세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1장에서는 영화 <수라>를 이야기하며 "기후 위기와 생태 문제를 살피는 우리의 관심이 군사주의 비판으로 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2장에서는 <아바타: 물의 길>을 통해 영화가 기대어 있는 진부한 이분법의 도식을 비판하며 군사주의를 읽어낸다. 3장에서는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서도 다룬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조류가 디즈니를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어떻게 군사화된 영웅으로 여성을 재현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4장에서는 '오드킨(odd kin, 기이한 친척)'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파시즘과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기예르모 델토로의 영화 <피노키오>를 통해 이야기한다.
군사주의가 이 책의 중요한 문제의식이긴 하지만 이 책이, 그리고 저자의 관심이 군사주의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와 군사주의, 그리고 돌봄과 레퓨지아 등을 통해 파국을 상상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려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하는 이 세계를 들여다본다. 페미니즘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페미니즘 비평이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3월 7일 전쟁없는세상과 함께한 특강에서도 도드라졌는데, 저자는 '보로메오의 매듭'을 통해 이 책이 어떤 인식틀 속에서 쓰였는지,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에 대해 특히 많은 이야기를 했다. 보로메오의 매듭은 서로를 관통하며 얽혀있어서 분리된 수 없는 3개의 고리인데, 파국을 맞이하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3개의 고리가 바로 자본, 국가(STATE), 네이션(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더해 이 각각의 보로메오의 매듭의 근저에 깔려있는 가부장제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 이전부터 존재해 온 유구한 억압의 시스템을 바탕에 깔고 봤을 때 우리가 마주한 파국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3월 7일 특강 때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남성이 많아 영화가 숨 막히다는 말을 페니미즘 비평의 최대치라고 인식하는 세상에 대해 가부장제의 유구한 전통 위에 군사화된 근대 국민국가가 초래한 파국을 바라보는 페미니즘 비평의 최소치가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강의를 들으면서 페미니즘 인식론으로 바라보는 파국의 내용과 더불어 크게 인상 깊었던 것은 파국을 바라보는 저자 태도다. 언젠가부터 세상에는 파국을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식상할 정도로 넘쳐난다. 모두가 망할 거라고, 아니 이미 망했다고 말하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래서 이 멸망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무엇을 하자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이런 경향은 아포칼립스 영화를 쏟아내는 할리우드에만 넘쳐나는 게 아니다. 사회운동이나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파국 서사를 즐겨 쓴다. 때로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때로는 자포자기의 냉소적인 태도로.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에서 손희정은 파국을 외면하거나 우리가 파국을 피하거나 막을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펼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제 다 끝났다는 식의 냉소에도 빠지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 저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깊이만큼이나 이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태도는 인식과도 연결된다. 예컨대 인류가 지구의 지질시대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의 인류세를 남반구의 시선 등 다양한 접근으로 분석하면서 인류세를 경계 사건으로 만들자는 해러웨이의 제안을 적극 인용한다. 다시 말해 지금 지구는 인간 때문에 파국에 직면했는데, 인류로 인해 파국이 도래한 하나의 독립된 '세(epoch)'로 만들지 말고 우리의 노력으로 앞선 지질시대와 다음 지질시대 사이에 낀 지나가는 사건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세상이 파국을 이야기할 때 "망했다"는 좌절감으로부터 선선하게 한 걸음 물러서는" 이 태도가 페미니즘 인식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 책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나는 현실에 적극 개입하고 액션을 조직하는 활동가로서, 파국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관심이 많다. 두려운 것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마주한 다음에 우리의 역량을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찾아내는 건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파국을 회피하고 외면하거나, 이미 망했다며 냉소하기 쉬운 것이다.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알면서도 용기를 내거나 노력을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우리가 마주한 거대한 파국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용기 있는 동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뭐라고 함께 도모하려고 노력하는 동료를 만난 것만 같아서.
그리고 이 용기와 노력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와 만났을 때 답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식론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지만, 현실 속 여러 사건이나 문제를 마주할 때는 이런 인식론이 아주 세세한 지점까지 구체적인 답변을 주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3월 7일 특강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는데,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전쟁에 저항하는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이 군사적 저항을 주된 방식으로 채택한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개입하고 연대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의 페미니스트 그룹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무기 지원 호소에 응답하고자 한다면, 상대적으로 전쟁터와 멀리 떨어진 한국에 사는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 페미니스트라면, 평화주의자라면 군사주의는 가부장제나 국가주의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강화하고 있으니 우리는 어떠한 군사적 방식도 거부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지지하는 러시아 평화활동가 그룹을 현실에서 비판하는 것은 하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한 사유를 요구한다.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인식론에 맞서 세상의 복잡성을 사유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면 말이다.
저자는 3월 7일 특강에서 이 견고한 우리를 파국으로 인도한 시스템의 외부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능력과 배짱이 필요하다는 김엘리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시스템의 외부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시스템 외부를 사유하는 배짱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조차도 시스템의 내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외부를 상상하고 사유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용기와 노력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쉽지 않음을, 지금 우리에게 답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쉽지 않은 것에 반복해서 도전하며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함께 기울인다면 도나 해러웨이가 말하듯 우리에게 다가온 파국을 지구적 관점에서 지나가는 경계사건으로, '더 나은 파국'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많은 이들의 용기와 노력을 북돋아 줄 테니까.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