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군대'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네이버나 구글에 '군대'를 검색해 보면 나오는 이미지는 주로 군인들이다. 드물게 탱크나 헬리콥터, 혹은 군복 입은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비장애인, (아마도) 이성애자, 한국인(로 추정되는) 남성이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들이 주르륵 검색된다. 이들은 대체로 일정기간 동안 내부반에서 함께 훈련받고 생활하니, 군대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비장애인 이성애자 한국인 남성들이 군복을 입고 함께 훈련하고 생활하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군대의 전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사회의 모든 집단이나 조직이 그렇듯 군대 또한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 아니 어떤 면에서 군대는 사회의 다른 조직이나 집단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적 자원을 필요로 한다. 당장 휴가 나온 군인들의 용돈과 유흥을 책임져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없다면 과연 군대가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군대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때 응당 군인들의 존재와 그들의 생활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군인 이미지에는 애초에 법적으로 군인이 될 자격이 없는 이들(장애인, 여성, 이주민)과 군인이 되더라도 군대 안에서 차별받고 배제되는 이들(여성 군인, 성소수자 군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의도적인 은폐는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많은 예를 들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예만 들자면 군부대 옆 성매매밀집지역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있다. 대부분의 군부대 옆에는 성매매밀집지역이 있지만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군대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여성들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리고 때때로 정부는 군인들의 건강을 위해 이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지만 이들이 미군을 상대로 달러를 벌어들이든, 한국군을 상대로 하든 이들의 존재와 역사를 은폐하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군대에 대해서, 군인에 대해서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전략적으로 은폐된 이들, 혹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지워진 모습들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당연하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우리 사회에서 군대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과 연구가 충분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도 (한국) 군대를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살펴보고 질문하는 책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출간이 무척 반가웠다.
일곱 개의 챕터는 제목대로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군대에서 모범적인 군인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 이들-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 심사,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하는 군형법, 징집 대상이 아닌 여성의 징병을 둘러싼 논의,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에 동원되고 희생되는 비인간 동물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해나간다. 또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홍보하는 국방 엔터테인먼트와 상품화되어 예능과 드라마로 침투한 군대의 재현물들에 대한 분석은 한국 사회에서 군대가 어떤 의미로 어떻게 위치해 왔는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군대의 의미와 군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각각의 챕터가 저자도 다르고 내용적으로도 완결적인 글이기 때문에 관심 분야에 따라 어느 것을 읽거나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각각의 원고를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는 뽑아볼 수 있을 거 같다.
변화
한국 사회의 경제적, 산업적인 변화는 군대(혹은 병역)의 의미를 변화시켰다.
산업화시대에 병역의무는 경제력을 지닌 가장으로서 국민으로서 남성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토대가 되었다. (중략) 그러나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젠더 구조가 달라지면서 기존의 시민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병역의무를 이행하나 취업도 요원하고, 남성만의 생계부양은 현실적이지도 않다.(김엘리, 남성들은 무엇이 억울할까, 97쪽)
쉽게 말하자면 옛날에는 군대 갔다 오면 취직도 잘 되고 돈 벌어서 가장 노릇 하고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군가산점제 시행하고 기업들도 군사화된 규율이 몸에 익은 예비역을 선호했지만,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순응적이고 위계적인 군사문화에 익숙한 노동자보다는 창의적이고 협동에 능한 노동자를 기업들이 선호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때문에 과거와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남성들의 억울함으로 표출되고 그것이 여성징병제 도입 촉구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군대 스스로 사회와 관계를 변화하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2021년 국방부에서는 국군의 날 맞이 이벤트 '국군의 향을 드립니다'로 향수 샘플을 증정했다. (중략) 이는 국방부가 정훈 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시대에 맞춰 변화하겠다는 의미를 표방한 것이기도 하다. 군대를 위한 하는 국민에서 군대가 국민을 위안하는 방식으로 방향이 전환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허윤, 오빠는 군대에서 무엇을 할까?, 38쪽)
이러한 변화는 '군대 예능'의 프로파간다 방식과 내용의 변화로 이어진다.
2010년대를 풍미한 관찰 예능 포맷의 병영 체험 프로그램은 소위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서사에 군사훈련을 녹여내어 시대가 원하는 바람직한 인재상에 군사화된 태도를 (새삼스레) 개입시켰다. (조서연, '이미 완성된 남자들'의 군대, 48쪽)
1980년대~90년대 대표적인 군대 예능이었던 <우정의 무대>의 대표적인 멘트는 "뒤에 계신 분은 저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고 외침이었다. 나라를 지키는 남성 군인과, 이를 돌보는 어머니 여성이라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대비가 프로그램의 전략이었던 반면, 지금의 예능에서는 시대정신(?)에 걸맞게 무한 경쟁과 능력주의가 프로그램의 시청률 견인 전략인 것이다.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산업 구조나 경제 구조의 변화에 따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경제 강국, 군사 강국이 된 대한민국의 새로운 프로파간다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강철부대>의 대테러 미션들이 보여주는 남한의 새로운 군사주의 프로파간다가 '전 국민의 군사화'와 같은 일국적이고 내부적인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데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조서연, '이미 완성된 남자들'의 군대, 65쪽)
<우정의 무대>에서 <진짜 사나이>를 거쳐 <강철부대>까지 군대 예능의 변천사를 보면 각 시대의 군사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필 수 있어 이 변화의 양상이 무척 흥미롭다.
안보
한편 책의 마지막 챕터는 인공지능 무기의 출현이 가져올 전쟁의 양상과 의미, 그리고 전쟁을 감각하는 우리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본다.
AI가 접목된 전쟁 기술이 전쟁의 문턱을 심각하게 낮출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이다. (중략) 인간 전투원 대신 로봇이 투입되는 전쟁은 군인의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통수권자 및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전쟁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데 있어 위험부담이 훨씬 줄어드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중략) 기존과 달라진 전쟁의 모습은 전쟁터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대중들의 감각과 관심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대중의 전쟁 억지력은 낮아지게 될 위험이 높다. (장박가람, 인공지능 무기는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220쪽)
전쟁의 변화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안보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AI 무기는, 다른 산업에서 공공연하게 반복적으로 발견된 AI의 문제점-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습득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결국 무기를 통한 평화와 안보라는 안보의 본질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면 편견 없는 AI무기의 개발이라는 이상한 답으로 흐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안보의 본질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안보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군대, 징병제는 과연 무엇을 지키는 제도일까?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대답이 가장 일반적으로 나올 것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니까. 외국 군대로부터 자국민을 지키는 것이 군대의 역할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징병제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근대 국민국가의 징병제는 외부로는 외국 군대와의 전쟁이라는 쓸모가 있었다면 내부적으로는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군대에 갈 자격으로 정상과 비정상, 투표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었다. 그리고 때로는 군대와 안보는 내부를 공격하는 수단이 되었다.
병역법은 공동체 내부의 적을 처단하는 데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1950년대 자체 경비원까지 세울 정도로 무법천지였던 신앙촌을 일시 단속하는 데 동원된 것은 병역법이었다. (중략) 병역법이 국민 일반을 구속하는 데 사용된 것은 병역법이 토대로 한 안보가 외부가 아닌 내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허윤, 오빠는 군대에서 무엇을 할까?, 17쪽)
권리와 호혜
안보의 의미를 독점하고 있는 국가권력은 철저하게 군사회 된 안보를 추구한다. 안보의 군사화는 군사적 수단-총칼로 평화를 지킨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분법을 작동 원리로 하는 군사주의의 사회적 확산 또한 안보 군사화의 중요한 내용이다. 지키는 사람과 보호받는 사람의 이분법은 군인이 될 자격이 있는 자와 자격이 없는 자, 정상과 비정상, 국민과 비국민으로 확장된다. 이때 뒤에 놓인 존재들, 군대 갈 자격이 없고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존재들은 군대에서 배제되거나 은폐된다. 이들이 드러나는 경우는 권력자들이 호의를 베풀 때다.
'전쟁경험을 횡령당한 비국민-비인간존재들의 안부를 묻다'에서 심아정은 전쟁에 동원되었지만 나중에는 버려진 동물들을 불러낸다. 이들이 칭송을 받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는 사실은 "전쟁을 미화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전쟁영웅을 만들려는 인간동물들의 호혜 때문이다. 난민화, 노예화, 죽음정치라는 개념으로 전쟁터에 동원된 동물들의 전쟁노동을 살펴본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전쟁 때 러시아가 교정시설에 구금되어 있는 HIV 감염인들 5만 명가량을 치료제 제공을 거래 조건으로 내세워 전쟁터로 내몬 것 또한 난민화, 노예화, 죽음정치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난민화, 노예화, 죽음정치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국 주체의 저항 아닐까. 하지만 권력자들은 저항의 권리마저도 자신들이 관용하고 호혜를 베푸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현상 유지가 전제된다면 허용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지배적인 군사정책에 균열을 가하지 않는 선에서만 인정될 수 있는 사안으로 여겨지니 병역거부자가 제시하는 문제의식도 소수자 개인의 사적 문제로 한정해서 용인해줄 따름인 것이다. (백승덕, 섹슈얼리티 읽어-버리기, 114쪽)
그럼에도 성적 지향에 따라 형성한 신념은 재판 과정 내내 무시되었다. 군대문화에 대한 비판은 사사롭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무시되고 나서야 관용할 대상으로 인정될 수 있었다.(백승덕, 섹슈얼리티 읽어-버리기, 121쪽)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리의 언어가 아니라 저항의 언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