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Jun 09. 2024

지배종

짧은 리뷰 

스포일러 있음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지배종을 봤다. 원래는 송강호와 변요한이 나온 삼식이 삼촌 보려고 디플 구독했는데, 그동안 많이 본 작품들-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남성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느낌이 없었다. 남은 구독기간이 아까워 지배종을 보기 시작했는데, 삼식이 삼촌과는 다르게 일단 드라마의 소재부터 신선했다. 


동물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인류(지배종)의 탄생을 꿈꾸는 생명공학회사라는 설정도, 그리고 윤자유(한효주 분) 대표가  그러한 회사 BF(Blood Free)를 만든 까닭이 대학원생 시절 살처분 현장에서 동물에 대한 학살을 목격한 뒤 그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 때문이라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마치 아이언맨 시리즈에 나오는 자비스 같은 BF사의 AI 운영시스템 장영실 또한 SF 장르물에 기대할 수 있는 눈요기로 부족함이 없었다. 이야기의 갈등구조가 뒤로 갈수록 엉성해지는 것은 옥의 티라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은 다른 데 있다. <드라마의 말들> 저자 오수경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브라이언(권해효)의 표현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드라마는 우리가 "결국 버리게 될 것"을 고집스럽게 반복하기도 하고 "시대가 결국 선택하게 될 것"을 미리 당겨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와도 닮고, 과거를 버리지도 못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미래로 언저 달려가 버린 듯한 복잡한 세계다. 


지배종은 SF 장르의 특성상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 우리가 마주할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 배양육, 배양장기, AI 시스템 같은 것들이다. 지배종 안의 갈등 구조는, 아마도 미래에도 그렇겠지만 굉장히 현재적이다. 국가 원수를 노리는 폭발 테러, 새로운 기술을 둘러싼 기업 사이의 갈등 같은 것들이다. 갈등의 주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행위자들-기업, 정부, 시민 혹은 개인이지만 이들이 갈등하는 이유에는 권력과 돈과 신념 같은 과거/현재적인 요소들과 새로운 첨단 생명공학 기술이라는 미래적인 요소가 엉켜 있다. 


나는 건물 관리부터 수술까지도 척척해내는 AI 운영시스템 장영실이나 배양액으로 만들어낸 배양육과 배양장기 같은 미래의 과학기술보다도 지배종이 그리는 미래 사회의 기업과 정부, 시민단체가 각기 사회진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지배종에서 '진보'를 상징하는 곳은 BF다. BF의 진보는 정치적 좌파를 뜻하기보다는 새로운 철학, 새로운 과학, 새로운 세계를 위한 혁명적 변화를 선도한다는 의미다. 생명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 생태계라는 새로운 신념,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가히 혁명적인 과학기술을 선도한다. 이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곳이 시민단체라거나 급진적인 정치 집단, 혹은 종교집단이 아니라 기업으로 그려진다. 


이 드라마에서 진보를 방해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보수, 즉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은 조직된 시민들-특히 축산농가 농민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다. 이들은 BF 회사의 건물 앞에서 매일같이 시위를 하며 윤자유 대표를 비판한다. (아, 물론 이와 반대로 BF와 윤자유 대표를 옹호하는 시위대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고, BF와 윤자유 대표가 처한 곤란한 상황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그리고 윤자유 대표와 실질적인 갈등 구조를 이루는 곳은 바로 총리인 선우재(이희준 분)와 그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기업의 도슨의 선우근(엄효섭 분) 회장이다. 이들은 BF가 개발한 배양장기 기술을 탈취해 새로운 어마어마한 시장을 자기들이 독점하고 싶어 한다. 둘은 완전하게 같은 편은 아니며 둘의 욕망과 선택은 행정부의 2인자로서, 기업인으로서 협력하기도 갈등하기도 한다. 


즉 이 드라마의 세계관에서 진보를 이끌어 가는 것은 기업이며, 이 변화를 반대하는 곳은 집회를 하는 시민들(혹은 시민단체)이고, 진보를 이끄는 기업의 대항마는 이윤을 위한 사회변화와 진보를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기업이다. 정부는 공적인 역할을 하기보다는 기업과 결탁한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구현하는 수단으로써만 기능한다. 


이런 설정은 적어도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 내가 인식하고 있는 정부와 시민단체와 기업의 역할과 매우 어긋나 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도 하고 더러는 지배층의 권력에 봉사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부가 공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돈벌이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기업과는 달리 정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공공의 시스템과 공익을 위한 역할을 정부가 한다고, 혹은 해야 한다고 여긴다. 반면 우리가 겪은 무수한 기업들의 악행에서도 드러나듯이 돈이 된다면 사람 목숨쯤이야 가볍게 생각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마지못해 따를 뿐 할 수만 있다면 이윤 창출에 방해가 되는 사회적 책무 따위는 엿 바꿔 먹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민단체는, 그래도 적어도 기업과 정부를 감시하고 사회의 공적인 영역에서 필요한 발언과 역할을 수행하며 대체로 진보적인 스탠스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정부, 기업, 시민단체의 역할이 완전히 바뀌어 있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오수경 대표의 말처럼 드라마는 시대가 선택할 미래를 민감하고 예리하게 포착해 우리에게 미리 보여준다. 기업이 사회 진보적인 의제를 주도하는 미래는 아주 멀지 않았는지도, 아니 어쩌면 이미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지배종에서 다루고 있는 대체육의 경우, 이미 대기업들이 관련 상품을 출시하는 등 발 빠르게 사회 변화와 사람들의 욕구에 대처하고 있다. 반면 정부나 시민단체의 인식이나 태도가 기업보다도 더디기도 하다. 드라마 지배종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넘어서 사회의 진보와 공동체를 위한 고민까지도 기업이 주도하는 세상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한 셈이다. 


이는 확실히 시민단체 활동가가 직업인 나로서는 썩 반가운 미래는 아니다. 내 밥벌이, 혹은 내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도 크지만 그보다는 지배종에서도 묘사되는 것처럼 기업이 정부를 능가하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시민단체는 그저 반대만 하는 무의미한 세력이 될 경우 기업의 폭주를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명을 해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윤대표와 BF 그룹은, 그 신념을 위해 직원들이 민감한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감시하고 활용하기도 하고, 스파이 노릇을 하다가 들통난 회사 간부를 고문하기도 한다. 이는 BF 간부들이 특별히 악독한 사람이라서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부터 견제받거나 통제되지 않는 권력의 속성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신념이 다를 뿐 윤자유 대표나 도슨의 선우근 회장은 같은 방식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분명 기업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기업만큼 빠르고 민감하게 대응하기에 덩치가 클뿐더러 관료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고, 시민단체는 세상의 빠른 변화를 따라갈 재원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지배종이 그리는 미래 사회가 아주 생뚱맞지는 않을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든다. 과연 사회 진보에 대한 추동력마저 기업이 장악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대변할 있을까? 나은 미래와 인류의 진보를 어떻게 정의로운 방식으로 추구할 있을까? 



공식 포스터





매거진의 이전글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