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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pr 02. 2020

예술적 상상력

짧은 리뷰

내 직장인 전쟁없는세상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는 비폭력 프로그램이다. 이게 뭐냐면, 설명하기 귀찮으니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설명을 그대로 가져와본다. 


전쟁없는세상은 2012년부터 비폭력프로그램을 신설하고 다양한 시도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운동을 보다 파워풀하고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트레이닝들 및 자료들을 제공하고 성공적인 비폭력운동의 사례들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사회운동을 효과적이고, 창의적으로 하기 위해 다양한 워크숍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사회운동은 대체로 돈도 사람도 부족하니 효과적이고 창의적이어야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면은 사회운동 캠페인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필수로 한다. 목표가 무엇인지, 우리의 메시지는 누구를 향하는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지,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지, 필요한 자원과 수단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여러 툴을 가지고 따져보고 토론한다. 


그나마 효과적인 면은 나름 연습도 많이 해봤고, 이런 사고의 흐름이 익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창의적인 사회운동 캠페인에서는 모두들 머뭇거리게 된다. 창의적이고 기발한 영감은 예술가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적 상상력』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데모를 좀 더 창의적으로 잘하고 싶어서, 그때 필요한 것이 예술적인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음악, 문학, 회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두루 다루며 사회 변화를 이끄는 상상력의 근원으로서 예술의 속성을 살피고, 그 예술이 사회 변화와 어떻게 조우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피카소, 클레, 몬드리안, 모차르트, 톨스토이, 푸쉬킨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연관성을 규명한 부분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 행위나 예술 작품을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반대로 기술(테크놀로지)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면서 꼭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예술도 뭔가를 가공한다는 면에서 테크놀로지의 일환이라고 이야기한다. 에리히 프롬의 『The art of loving』을 '사랑의 예술'이 아니라 '사랑의 기술'로 번역하듯, 'art'는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은 또한 자연으로부터 인공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자연은 꾸밈과는 거리가 멀다. 꽃이든, 곤충이든 아무리 화려해 보이고 쓰임을 모르겠는 기관들조차도 다 필요해서 존재한다. 예술 또한 필요 없는 요소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이 테크놀로지로서 예술이고, 모자란 부분을 숨기는 건 예술이 아니라 장식이라는 것이다. 시계를 예로 드는데, 시계의 쓸모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고, 시계의 모습은 그 쓸모를 가장 잘 전하기 위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는데, 시계를 꾸며주는 금은보화 장식은 실은 시계의 쓸모와는 무관한 데코레이션이라는 것이다. 


형태가 완벽할 때, 형태는 모습 그대로 이해되기 때문에 장식이 필요 없다. 장식은 독창적이지 않은 양식들, 곧 다른 데서 파생한 형식에서나 중요하다 - 『예술적 상상력』83쪽에 인용된 안토니 가우디의 말


흥미로운 가운데, 조금 고개를 갸웃하는 지점도 있다. 예술 작품에 대해 작가가 자신의 해석을 설명하는데 내 경우는 동의가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피카소 그림의 인물 표정의 의미를 해석하거나, 클레 그림에서 선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는데 나는 당최 그렇게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뭐 예술이란 아는 만큼 보이는 건데 내가 그 작품을 해석할 만큼 잘 알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결국 고전이란, 혹은 명작이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작품들 아닌가. 파울 클레의 '지저귀는 기계'의 소용돌이치는 나선을 아무리 봐도 내 귀에는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술알못의 약간의 심통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 읽고 나니까 사회운동 캠페인을 더 창의적으로 할 수 있겠냐고? 책 한 권 읽고 창의적이 될 수 있다면 이미 모두가 창의적이겠지. 혹은 책 한 권 읽고 나서 창의적으로 변했다면, 그 책 읽기 전에 경험한 무수한 독서와 사유와 예술 행위에서 기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 책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예술과 기술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는 재밌고, 내게 지적인 자극이 됐다. 우리가 사회운동 캠페인에서 창의적이고자 할 때 뭔가 시각적으로 색다르거나 충격을 동반한 것을 생각하기 쉽다. 그런 것들은 대체로 '장식'이다. 예술은 꾸밈이 아니라는 말, 형태가 완벽하면 모습 그대로 이해된다는 말, 결국 꼭 필요한 패턴을 파악해서 보여주는 방식의 창의성. 창의적인 캠페인을 생각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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